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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 Sep 08. 2023

여름의 맛, 가족의 맛

일상에세이




우리 가족은 요즘 다 같이 모여 밥을 먹는 일이 드물다. 남편은 새벽에 나가 자정이 다 되어서 집에 들어오고 출장도 자주 간다. 큰 아이는 대학생이 된 이후로 입시를 준비하며 통통하게 붙은 살을 뺀다며 식이조절을 한다. 둘째 아이는 아직 학생이다 보니 그나마 아침은 꼬박꼬박 챙겨 먹지만 점심은 학교 급식으로, 저녁은 주로 학원가는 길에 친구들과 해결한다.


나는 아침에 둘째 아이 밥을 차려주고 나면 입맛이 그다지 당기지 않는다. 설거지를 마치고, 집안 정리를 끝내고 나서야 밥을 먹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러다 보니 식탁에 네 식구가 모두 모여 앉는 일은 극히 드문 일이 되었다. 아침마다 간단히라도 한 끼를  함께  먹으려고 서두르던 가족들의 모습은 어느덧 추억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에게 휴가는 다정하게 서로 얼굴을 마주 볼 귀한 시간이다. 가족들이 제각기 바쁜 와중이어서 특별히 휴가 계획을 세우지는 못했는데 여름 기분 좀 내보자고 급하게 리조트를 예약하고 삼척으로 떠났다. 동해바다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푸르름으로 가득 채워지는 듯했다.



노을 지는 삼척 바다



예전에는 휴가를 간다고 하면 요리거리를 챙겨가곤 했다. 저녁에는 주로 삼겹살을 구워 먹고, 떡볶이며, 과일, 아침에 간단히 먹을 라면 등 가방이 먹을거리로 한가득이었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요리랄 것은 없네. 이제는 되도록 음식은 가져가지 않는다. 그 지역에서 맛있는 먹거리를 찾는 것도 재밌는 일이다.     


휴가는 모든 잡다한 일들로부터 해방되어 정신도 맑아지는 시간이다. 단순하게 그저 풍경을 보고, 맛있는 것을 먹고, 책을 읽으며 여유롭게 보낼 수 있어서 좋다. 아이들과 나는 옷보다 책을 더 많이 가지고 다. 여행 기간에 소강상태인 장마전선이 다시 북상해서 계속 비가 올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에 수영복도 챙기지 않았다.


고등학생인 둘째는 영어, 수학 모의고사문제 풀이 등 학업계획을 촘촘하게 세웠고, 큰 아이는 두꺼운 전공 책 한 권을 챙겼다. 나는 여러 권의 책을 가지고 려다 욕심을 버리고 단 한 권의 책만 읽기로 했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출발할 때 몇 방울 내리던 비는 금세 그치고, 하늘은 어느덧 푸른빛에 황금빛 물감을 흩뿌리며 몽환적인 풍경을 그려냈다. 책을 펼칠 새도 없이 우리를 부르는 바다로 뛰어갔다.      


멍하니 풍경에 빠져 있다가 저녁이 되어 우리가 먹으러 간 것은 바닷가에서 흔한 물회와 대게였다. 눈처럼 소복하게 쌓아 올린 양배추와 각종 푸릇한 채소 그리고 쫀득하면서도 부드럽게 넘어가는 회와 싱싱하게 오독거리는 전복이 듬뿍 올라간 물회는 매운 양념까지 상큼해 맛깔스러웠다. 거기에 국수사리까지 말아먹으니 한 끼 식사로 든든할 법도 한데 사실 나는 바닷가에 오면 언제나 뭔가 허전하다. 회는 고추장 맛으로 먹고 전복비빔밥 정도는 먹어줘야 그나마 만족스럽다.


아이들은 아빠를 닮아 바닷가 음식을 무척 좋아한다. 할아버지도 생선과 갑각류를 많이 좋아하셨다. 입맛의 유전자가 신기할 따름이다. 어려서 특별히 많이 먹이거나 가르친 것도 없는데 비릿한 바다내음을 좋아한다. 심지어 생선에 비린내가 나지 않으면 무슨 맛이냐고 한다. 산에서 자라 나물과 곡류를 좋아하는 나와는 전혀 딴판이다.


전복이 듬북 올라간 물회



해산물을 좋아하고 잘 먹는 아이들을 보면 그저 흐뭇하다(지금은 바다가 많이 오염되어 좋다고 할 수만은 없지만). 큰 아이는 대게의 내장을 특히 좋아하는데 몸속의 내장과 그 국물을 감칠맛 나게 먹는 모습이 신기하면서도 사랑스럽다. 아이들을 먹이려고 열심히 가위질을 하는 남편도 보기에 좋다. 먹으며 그동안 시험 보느라 힘들었던 일들, 남편은 남편대로 회사에서 겪는 고충을 털어놓는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으로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흘러간다. 소원했던 마음들이 먹는 것들 앞에서 공감을 이룬다.


다음날 우리는 한국의 나폴리라고 불리는 장호항과 BTS 뮤직비디오 촬영지인 맹방해수욕장에 갔다. 해변을 따라 걷고 또 걸었다. 바람이 부는, 노을이 지는, 바다가 풍겨주는 향기 속에 가족의 추억이 가득 담겨 오래오래 기억될 것 같다.      


한국의 나폴리라 불리는 장호항




집에 돌아와 신발을 벗는데 모래 알갱이가 부스스 추억을 흘린다. 손에서는 아직도 게 냄새가 나는 것 같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고, 남편은 집에 오자마자 다시 출근을 했다. 아이는 학원에 가서 밤늦은 시간까지 돌아오지 않는다.


오랜만에 동네 친구들을 만나 커피를 마셨다. 해는 쨍쨍한데 한 번씩 소나기가 쏟아졌다 그친다. 비가 그치고 나면 다시 파란 하늘에 솜사탕 같은 구름이 하얗게 몽글거린다. 그 풍경이 너무 예뻐, 한참을 올려다본다. 바다가 계속 생각난다. 한동안 바다와 물회와 게의 비릿한 냄새가 내 마음을 채우고 있을 것 같다.      



맹방 해수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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