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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 Sep 09. 2023

쓰기와 마늘 까기




세 번의 공연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찹쌀떡처럼 녹진하게 퍼져 있는 겨울 이불 두 덩어리 옆에 내 몸뚱어리를 던져 놓는다. 눈썹이 치켜 올라간 투덜 부엉이가 ‘이제 그만 겨울 이불을 치우시지’하고 말하는 것 같다. 힘겹게 몸을 일으켜 이불을 들고 집 근처 빨래방으로 간다. 빨래 바구니에 딸려 온 투덜 부엉이가 커다란 세탁기에서 이불과 함께 자유롭게 헤엄친다. 몸도 마음도 유연해진 것 같다.     


도서관에서 아이들을 위한 동극 공연에 참여했다. 코로나 이후 3년 만에 다시 시작한 공연은 긴장과 설렘 속에서 무사히 세 번의 공연을 마치고, 500여 명의 지역 아이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내가 맡은 역할은 ‘투덜 부엉이’였다. 시종일관 투덜거리며 친구도 놀이도 못마땅한 표정이지만 토끼와 곰, 그리고 파랑새가 함께 노는 모습에 호기심을 감추지 못한다. 부엉이는 다른 동물들과 어울리는 것이 어색하기만 하다. 부엉이가 등장하여 ‘싫어’, ‘마음에 안 들어’라는 대사를 계속하며 투덜거리자 아이들이 참지 못하고 나섰다.


‘부엉아, 그만 좀 투덜대!’, 목에 힘이 들어간 목소리들이 여기저기서 부엉이를 때렸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에는 ‘부엉아, 이제는 괜찮아? 친구들하고 잘 지낼 거지?’ 하며 어느새 다정해졌다. 대 여섯 살짜리 아이들의 진심이 담긴 목소리에 웃음이 나면서도 가슴 한구석이 뭉클했다.       

배역이 어쩌면 그렇게 찰떡이냐며 사람들이 칭찬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말들을 해 주었다. 벌거벗은 임금님이 된 것만 같았다.


공연은 끝났고 이불은 빨아서 수납장에 잘 정리해 두었으니 얼마 전 남편이 어디선가 얻어 온 육쪽마늘도 까고 말겠다고 결심해 본다. 텔레비전이나 실컷 보면서 마늘을 까야지. 부엌을 정리하고 마늘에 물을 부어 놓는다. 부엌 베란다에 던져놓은 알맹이가 실하고 단단하고 싱싱한 마늘. 언제부턴가 시골에서 오지 않는 채소들, 쌀, 참기름, 들기름 그런 것들이 아쉬워졌다. 잔뜩 실려 올 때는 투덜거렸던 것들이다. 냉장고에서 흐물흐물 시들어 가던 상추, 호박, 부추. 이런 것들.


오늘 육쪽마늘은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살려야지 잘 먹어야지 시들게 두지 말아야지.  거실 바닥에는 신문지를 깔고, 까지 않은 마늘 통, 껍질 통, 알맹이 통, 이렇게 준비를 해 두고, 넷플릭스를 켜서 시리즈를 하나 골라 격파하고 말겠다는 결심을 세운다. 요즘 뜨는 드라마 중 한 번에 보려고 아껴두었던 드라마를 고르고 준비 완료. 마라톤 바통을 건네받은 것처럼 리모컨을 들고 ‘준비, 시작!’을 외쳐본다. 플레이 버튼을 누른다. 마늘 까기 인지, 드라마 보기인지는 모르겠지만.


혼자 마늘을 까는 시간, 이릴 적 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만두를 빚고, 삶은 감자를 먹고, 송편을 만들고, 손이 노래지도록 귤을 까먹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송편을 예쁘게 만들면 예쁜 딸을 낳는다는 낭설을 농담 삼아 주고받기도 하면서. 어린 나는 그게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고 모양이 잘 나지 않는 송편을 주먹으로 꾹꾹 눌러버리기도 했다. 밤이면 함께 마당 평상에 누워 반짝이는 별들을 바라보았다. 까만 밤하늘에 박힌 보석들을 쫓아가며 카시오페이아자리도 찾고, 국자 모양 북두칠성을 찾았다. 여름에는 아카시아 파마를 하고 겨울에는 눈으로 성을 세우고, 눈밭을 함께 굴렀다. 지금은 누울 평상도 없고, 그저 까맣기만 한 하늘에는 반짝이는 것이라고는 인공위성뿐이다. 나는 텔레비전을 벗 삼아 홀로 마늘을 깐다. 남편의 말대로 마늘은 윤이 반짝반짝 나고 통통한 것이 아주 실해 보인다.


눈은 텔레비전을 보고, 손은 마늘을 깐다. 몸통을 쪼개고 작은 알맹이마다 껍질을 벗긴다. 예전 같지 않은 허리, 오래 앉아 있기가 힘들다. 소파로 올라와 양푼을 무릎에 올려놓고 까는 것이 조금 편하다. 그것도 조금 지나니 무릎이 불편해진다. 다시 식탁에 올려놓고 깐다. 잠시는 괜찮더니 이번에는 어깨가 아프다. 귀한 마늘, 비싼 마늘을 중얼거리며 열심을 내본다. 요즘은 비싸지 않은 것이 없다. 음료수 하나, 아이스크림 하나도 그렇다. 비싸지 않은 것은 무엇일까. 바닥에 뒹구는 마늘 껍질들이 내가 뱉은 변명 같아 눈이 맵다.   





마늘을 겨우 다 까서 헹구어 채반에 담고 신문지를 덮어 놓는다. 물기가 뽀드득뽀드득 마르면 내일쯤 믹서에 갈아 냉동해야겠다. 까고, 씻고, 갈고, 소분하면 마늘의 노동이 깔끔하게 정리된다. 오래오래 먹을 수 있다. 한때 노동하지 않는 죄책감에 빠져 있었다. 책방을 다녀와, 글쓰기 수업을 다녀와 집에 도착하면 지쳐 쓰러져 뒹굴었다. 손목은 아프고 목은 거북이처럼 일자가 되어도, 허리는 비틀어지고 무릎은 시큰거려도 문장은 언제나 오리무중 속으로 빠져들고 우주를 헤매고도 돌아올 줄 모르는데 마늘은 노동한 만큼 아름다운 자태로 냉동고를 채워 준다. 겨울이불은 제자리를 찾아 장롱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여름잠을 잔다. 있어야 할 곳을 알지 못하는 글 쓰는 노동자는 펴지지 않는 비틀어진 몸을 힘겹게 일으키며 끝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노동을 시작하려고 컴퓨터 앞에 앉는다.  내 글도 두뇌 어딘가에 소분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꺼내 쓸 수 있다면 좋겠다.




사진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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