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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 Sep 16. 2023

누구를 위하여    쿠쿠는 취사를 완료했나



삐삐삐~    

               디롱댕!




"취사를 완료했습니다

맛있는 밥을 잘 저어주세요."

하얀 쌀밥이 고슬고슬 지어지면 아침밥상의 반은 완성이다.



잠에서 깬 나의 행동은 일사불란했다.

아침 일찍 '전자책 만들기 수업'이 있어서 평소보다 일찍 집을 나서야 하기에 30분 정도 일찍 일어났다.

어젯밤에 쌀도 씻어 놓았고 반찬을 뭘로 할지 머릿속에 정리해 두었다.

 씻어 놓은 쌀을 쿠쿠전기밥솥에 올려 취사를 누르고, 김치를 달달달 볶아 사골국물과 돼지고기를 넣어 김치찌개를 보글보글 끓인 다음 불을 줄이고 갈비도 구워 놓았다. 그리고 씻으러 욕실로 갔다.



30분 만에 밥상을 완성했다. 완벽했다.

시간이 되어 아이를 깨우니 어젯밤 늦은 시간까지 공부를 했는지 잘 일어나지 못한다.

평소보다 조금  더 자야겠으니 깨워달라고 한다.



"그럼 밥을 못 먹잖아!"



못 먹을 것 같다며 고개를 겨우 끄덕이고 다시 이불을 덮는다.

그럴 계획이었다면 미리 말을 해주었어야지. 

밥상이 이렇게 준비가 되었는데 넌 왜 일어나지를 않니. 

속으로만 안타까워하고 차마 더 일어나라고 재촉하지 못했다.


그렇게 고슬고슬 갓 지은 밥과 맛있게 끓은 김치찌개와 갈비는 밥상 위에서 식어갔다. 어쩌지 못하고 아까워서 나라도 한 숟가락 먹어야지 하는데 출발해야 할 시간이 다 되어간다. 좌석버스 시간은 이미 지났고 비도 오는데 자동차를 가지고 려면 서둘러 출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각하고 말 것이다. 지각과 결석을 철저하게 체크하는 수업을 놓칠 수 없어서 발만 동동 구르다가 알람을 제대로 해 두었냐 확인하고 전화해 주겠다고 했다. 나조차도 제대로 먹지 못한 밥상을 혹시 아이가 일어나 한 숟가락이라도 먹지 않을까 해서 잘 덮어 놓고 집을 나섰다.


강남순환고속도로를 타고 달렸다. 터널은 그런대로 순탄하게 길이 열였다. 그런데 고속도로 출구, 사당으로 나가야 하는데 그만 잘못하여 과천방향으로 나오고 말았다. 유턴을 하려니 1차선으로 끼어들기가 불가능해 보인다. 할 수 없이 직진하다 보니 대공원까지 갔다가 되돌아오게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강의실에 꼴 인했다.


숨을 헐떡이며 생각했다. 과연 누구를 위한 밥상이었나?

수업이 끝나고 도서관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그리고 과제를 하고 오후 늦게 집에 돌아가니 밥상이 아침 그대로다. 그것을 저녁으로 먹었다. 결국 나는 나를 위한 밥상을 차렸던 것일까?




북레스토랑에서




나는 왜 그렇게 아침 밥상에 연연했을까?

고등학생이 되고 아침에 집을 나가 밤늦게 들어오고, 집에서 먹는 밥이라면 겨우 아침 한 끼, 주말도 별반 다르지 않아 아침밥이라도 챙겨 먹이고 싶은 마음이었다. 엄마가 애쓰고 차려 준 밥상 앞에서 아이도 아침만은 든든한 집밥으로 먹으려고 했을 것이다. 깊은 대화를 나눌 시간은 없어도 밥을 차리며 담은 엄마의 사랑이 전달되길 바랐다.




태국영화 헝거에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온다.







가난한 자들은 허기를 달래려고 먹지. 하지만 음식보다 더 많은 걸 살 능력이 있으면... 허기는 사라지지 않아, 인정받고 싶은 허기, 특별한 걸 갖고픈 허기,
특별한 걸 경험하고픈 허기.



집이 절로 생각나는 음식이 저마다 하나쯤 있을 텐데요. 나이가 들수록, 일에 매달릴수록, 외로운 마음은 커져만 가죠. 집에 돌아와 그 음식을 먹으면 안심이 돼요. 그리고 깨닫게 되죠. 날 아직 사랑해 주는 사람이 있음을.
나 또한 그들을 사랑한다고.
-넷플릭스 영화 [헝거]-




허기를 채우고 나면 또 다른 허기가 몰려온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아침마다 밥상을 차리는 엄마의 마음은 족이 밥을 먹고, 건강하게 자라고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고 싶은 것이다. 밥을 적당히 먹어 배를 채우고 따뜻하게 마음까지 채워져 평안하게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밥상. 나이가 들어서도 생각하면 안심이 되는 그런 음식 하나 정도는 기억하도록.



오늘도 그대의 몸과 마음의 허기를 채우는 밥상이 차려지고 있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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