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책 만들기] 후기 1
"어머 이거 너무 신기하다."
독립출판페어에 구경 온 지인이 눈을 떼지 못한다. 전시회에 참가하려고 칫 책을 들고 나 온 나도 책 판매보다는 참가한 작가들의 신기하고 다양한 책을 구경하느라 자리에 붙어 있지를 못했다. 내기 책을 만들었다고 하니 지인들도 놀라는 눈치다. 직접 찍은 사진과 글을 내 맘대로 편집하고 디자인한 뒤 인쇄소까지 들락거리며 독립출판이라는 것을 경험했다.
내 마음속엔 끊임없이 쓰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나는 글 위에서 춤추는 자유로운 나를 상상했다. 문장을 유연하게 주물러 단어 하나하나가 바람에 맡긴 화살촉처럼 날아가 슬픈 심장에 꽂혀 꽃으로 피어나길 원했다.
초등학교 때 뭔가 쓰고 싶었지만, 창의력이 없었던 나는 원고지에 어디선가 들었던 동화를 베껴 쓰고 있었다. 언니가 그런 나의 글을 한번 보자고 했다. 나는 그저 베껴 쓴 것이 부끄러워 아니라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극구 감추려 했는데 언니는 기필코 읽고야 말았다. 동생의 재능이라도 찾아주려 했던 관심이라는 것은 알았는데, 베껴 쓴 것이라고 말했으면 됐을 텐데,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언니의 실망스러워하는 얼굴에 낙심하고 말았다.
문학에 대한 환상만 품은 채 평범한 직장인으로 시간이 흘렀고 어느덧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었다. 아이를 키우며 동화라는 세계에 매료되었다. 쓰려는 용기는 내지 못했는데 그 무렵 나에게 글쓰기의 문을 열어 준 것은 뜻밖에도 수필 교실이었다.
그렇게 전에는 남들의 시시콜콜하고 밍밍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수필이라는 장르에 빠져들었다. 글을 쓰며 나를 쏟아 내는 일은 나를 다시 나다움으로 채워주고 있었다. 글 쓰는 일은 제법 재미있었고 백일장에서 받은 상장 하나가 계속 쓸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내 삶으로 들어온 글쓰기는 그대로 생활이 되었다. 힘든 일이든 웃긴 일이든 화나는 일이든 글쓰기 재료로 써야겠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일었다. 쓰면서 세상에 무관심하고 무뎠던 마음은 조금씩 말랑말랑 해져갔다.
글, 책, 책방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하던 어느 날 '나만의 책 만들기'라는 수업을 보게 되었다. 누군가 길을 내 주기 만을 기다렸던 무력감에서 벗어나 흔들리며 쓰러질지라도 걸어보자고 결심했다. 한 발짝 걸음을 걸어 길을 만들어 내는 것은 내가 아닌 누군가가 해 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망설임 없이 수업에 등록하고 이른 아침 열차를 타러 갔다. 버스를 타고 다시 전철을 갈아타고 다시 버스를 타면 되지만 기차역에 가는 것은 여행의 설렘을 가지게 했다.
열차를 타고 서울역으로 가서 책방까지는 버스를 타기로 했다. 열차가 10분 정도 지연되었다. 만나게 될 사람들, 함께 책을 만들 사람들은 어떤 모습일까 상상하는 동안 열차가 도착했고 자리를 찾아 앉았다. 열차가 흔들림 없이 달리는 동안 따뜻한 커피 한잔을 마셨다. 코로나 기간 동안 참아야 했던 열차 내에서의 커피 한 잔은 여행을 더 풍요롭게 해 주었다. 열차에서 내린 거리는 한산했고, 시간도 여유로웠다. 버스를 타는 대신 조금 걸어 보기로 했다. 멀리 서울타워가 보이는 동네의 골목길을 걷는 것은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예쁘고 귀여운 삶의 터전을 구경하는 사이 어느새 작은 서점 앞에 도착했다. 겉에서 보면 아주 작은 책방 같았는데 안은 제법 넓었다. 은은하게 주홍빛 따뜻한 불빛이 반짝였다. 일찌감치 문을 열고 손님을 준비한 듯 책방 안은 은은한 나무 향기로 가득했다. 책방지기님은 보이지 않고 향기와 책들이 반겨주니 더 편안한 느낌이었다.
독립출판물이 다양했다. 책의 크기, 질감, 편집형태, 색감 등 여러 가지 모양의 책을 접할 수 있었다. 종이책을 만지고 다양한 표지를 보며 작가들을 상상해 보았다. 충분한 위로와 기쁨이 몰려왔다. 제목 하나하나 그림 하나하나에 삶의 깊은 숨결이 느껴졌다. 내 책도 언젠가 이들과 같이 나란히 할 것을 상상하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다른 수강생이 오고 책방지기님이 등장했다.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수업이 바로 시작됐다.
첫 수업은 각자 만들고 싶은 책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독립출판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경험했다. 앞 기수 수강생들이 만든 책들과 그 안에 담긴 사연들을 들었다. 나는 여러 가지 생각들로 복잡했지만 일단 그동안 모은 사진들과 짧은 이야기로 사진 에세이집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다른 수강생들은 각자의 삶의 이야기를 펼쳐 보겠다고 했다.
책이라는 것을 정해진 틀 안에 가두려 했던 생각을 깨는 시간이었다. 자유로운 사고를 지향한다고 자신했지만 나도 모르게 점점 정해진 틀에 나를 맞추어 가고 있지는 않았나 생각해 보았다. 자유롭게 어떤 형태로든 어떤 방법으로든 만들어 볼 수 있겠다는 확신과 기대가 교차했다. 이 시간을 통해 생각이 통하는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즐거운 경험을 할 것이라는 확신이 차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