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촉촉하게 내렸다. 봄의 온기가 일찍 도착했지만, 2월의 이른 아침은 아직 쌀쌀했다. 장갑을 끼지 않은 손이 시렸다. 알레르기약을 먹어서인지 눈이 가물가물했다. 오늘은 열차 대신 전철을 탔는데도 한 시간이나 일찍 도착했다. 사실 예쁜 카페에서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싶어서 서둘렀다. 가려고 생각했던 카페의 창이 아직 어두웠다. 잠시 골목길 산책을 다녀오기로 했다.
지도에서는 알 수 없었는데 골목길은 가파른 언덕길이었다. 당장이라도 시지프스가 커다란 바위를 굴리며 내려올 것만 같다. 지팡이 하나에 의지해 내려오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위태롭다. 올라간 길을 엉거주춤 바닷게처럼 다시 내려오니 2층 카페의 창이 열리고 불이 켜져 있었다. 동화 같은 파란 문을 열자 풍경이 기분 좋은 소리로 반겼다. 계단은 몹시 좁았다. 한 칸씩 조심스럽게 오르니 아늑하고 예쁜 공간이 펼쳐졌다. 마치 비밀의 정원에 들어선 기분이다. 커피와 케이크 한 조각을 주문하고 구석구석을 살펴보았다. 열 평도 되지 않는 작은 공간에 벽마다 책들이, 고풍스러운 소품이, 책 모임 신문 기사가 다정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열린 창가의 자리가 가장 예뻤다. 창가 자리에 앉아 커피를 놓고 잠시 기다리니 차가운 공기에 뜨거운 커피가 살짝 식어 마시기에 좋았다. 달콤한 케이크를 한입 입에 넣으며 나의 책에 대해 생각했다.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고 수강생들 커피를 사들고 책방으로 갔다. 함께 맛보고 싶고 나누고 싶은 커피처럼, 나의 이야기도 누군가와 나눌만한 것이었으면 좋겠다.
수업 두 번째 날
아늑하고 다정한 공간에 들어왔다. 어색했던 수강생들과도 첫날보다는 친근해진 느낌이다. 오늘은 각자 만들어 온 책을 PDF파일로 함께 보며 의견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책 만들기에는 ‘인디자인’ 프로그램을 주로 사용한다. 사용 방법을 배우기 전이라 비슷한 프로그램인 퍼블리셔를 이용했다. 나는 100페이지 정도의 분량을 완성해 왔다. 책의 크기를 고민했지만 독립책방에서 주로 보았던 책의 종류 중 마음에 들었던 것이 한 손에 들어오고 가방에도 쏙 들어가는 작은 크기여서 120mmX170mm로 정했다. 막상 만들고 나니 너무 작은 것이 아닌가 갈등도 됐지만 추진해 보기로 했다.
산책하며 곳곳에서 촬영한 사진들을 모아 고르고, 가르고, 배치했다. 고르고 보니 주로 봄꽃 사진과 나무, 풀 등 자연이 주는 기분 좋은 느낌이었다. 사진에 알맞은 글을 선별해 놓고 다정하면서도 따뜻한 느낌으로 완성해 나갔다. 만족스러웠다. 딸이 그려 준 운동화 그림도 넣어 보았다. J님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테마로 잡았다. k님은 인생 전반의 깊고 섬세한 이야기를 쓸 예정이라고 한다. 다른 사람의 것은 책다운 책이라 느껴졌다. 남의 떡은 왜 커 보이는 걸까?
다음 시간에는 직접 인쇄한 완성 본을 준비해 오는 것이 숙제였다. 이렇게 빨리 진행되는 수업에 숨이 가빠왔다. 인쇄소 근처에도 가 본 적이 없는데 완성된 내 책을 만드는 것이 기대가 되면서도 떨렸다. 과연 잘해 낼 수 있을지 의심이 들면서 마음이 조급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