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도 볕도 기분 좋은 어느 봄날이었습니다. 거리마다 벚꽃이 만발하다 꽃비가 되어 내리는 날이었지요.
K선생님이 소풍을 가자고 제안했습니다. 산책을 좋아하는 성향이 잘 맞는 선생님과는 금세 친해져서 점심을 먹기 위해 일부러 일찍 출근할 정도였지요. 저는 오후 출근이다 보니 주간근무선생님들과 식사시간이 맞지 않았거든요. 도서관 근처에 마땅한 식당이 없어서 조금 걸어가야 하는 하는 번거로움과 점심시간이 넉넉지 않다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우리는 신나게 걸으며 산책도 하고 점심도 함께 먹곤 했습니다. 봄바람이 부니 소풍얘기가 절로 나왔고 벚꽃을 마음껏 즐기려고 생각했지요. 제가 생각한 소풍은 가끔 함께 먹던 햄버거로 가볍게 점심을 먹고, 꽃비를 맞으며 산책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패스트푸드 점에서 함께 점심을 처음 먹었던 추억이 좋았었거든요.
그런데 k선생님은 진짜 '소풍'을 준비했더라고요. k선생님의 양손에 들린 짐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놀람도 잠시, k선생님이 짠 촘촘한 일정에 따라 빠른 걸음으로 분식점으로 가서 김밥을 주문했습니다. 그리고 근처 공원으로 갔습니다. 푸른 나무들이 작은 숲을 이루고 분수대에서 시원한 물줄기가 뿜어져 나오고 벤치와 휴게공간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테이블에 작은 식탁보를 깔고, 김밥을 차리고 선생님이 싸 온 과일과 간식, 따뜻한 차를 차렸습니다. 그럴싸한 소풍상차림이었습니다. 그때 어디선가 바람이 휭 불더니 식탁보를 날려버리고 종이컵이 넘어졌습니다. 우리는 소녀들처럼 깔깔거리며 웃었습니다. 그저 즐거웠습니다.
함께 밥 먹는 것이 편한 사람이 있습니다. 점심시간이 기다려지는 일, 밥 먹기 위해서 회사에 간다며 우스갯소리로 출근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수 있다는 것은 삶의 즐거움 중 하나가 아닐까요? 처음 출근해서 적응하는 동안은 입맛도 없고, 함께 밥 먹는 것도 어색해서 샐러드나 간단한 과일을 준비해서 혼자 휴게실에서 밥을 먹곤 했습니다. 그리고 배가 고픈 줄도 모르고 10시까지 일을 하곤 했지요. 새로 오는 선생님들마다 하는 말이 비슷합니다. 처음에는 입맛도 없고, 함께 먹기도 어색하고, 그렇게 간단히 점심을 먹는 다기보다는 끼니를 때우는 정도지요.
이런 시기를 지나고 친해져서 함께 도시락을 나눠 먹고, 커피도 사주고, 간식을 싸와서 먹기도 합니다. 먹는 기쁨은 삶의 아주 많은 부분을 차지하니까요. 저는 주로 커피를 나눠마시며 많이 가까워지는 편입니다. 동네 로스팅 커피맛집에서 보온병 두, 세 개에 커피를 담아 구수하고 행복한 향기로 마음을 연결합니다.
평소에는 주로 도시락을 싸와서 함께 먹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배달주문을 해서 먹었습니다. 메뉴를 고르는 재미도 있었지요, 우삼겹짜글이, 비빔밥, 샌드위치, 쌀국수, 주꾸미, 찜닭, 토스트 등 이렇게 적고 보니 참 골고루 먹어 보았네요. 고슬고슬 잘 지어진 밥에 노른자를 흰자로 살포시 감싼 예쁜 달걀프라이를 올린 얼큰한 김치 우삼겹찌게에 반하지 않을 한국인이 있을까요. 게다가 상호대차를 마치고 나면 책을 많이 들었다 놓았다 해서 등줄기에 땀이 줄줄 흐르는데 그 뒤에 먹게 되는 밥은 노동 후의 달콤함 그 자체였습니다.
한 번은 비빔밥을 함께 해 먹고 싶다는 이야기가 나와서 재료를 나눠 준비해 오기로 했습니다. 비빔밥의 핵심이라면 나물일 텐데요. 여러 명이 먹을 나물을 만들어 오는 것이 어려울 텐데 누군가 나서서 먼저 나물을 준비하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달걀프라이와 양푼과 비빔도구 등 부피가 큰 것을 들고 오겠다고 했지요. 그렇게 비빔밥 회담이 성사되었습니다. 평생교육원에서 공부할 때도 비빔밥을 먹으며 즐거웠던 기억이 있었는데 함께 밥을 먹고 나면 식구처럼 가까워지는 느낌이 듭니다.
커다란 양푼에 밥과 여러 가지 다른 맛과 색을 가진 나물을 넣고, 고추장과 참기름을 넣어 슥슥 비비면 서로의 경계가 무너지며 하나가 되듯, 우리의 마음도 어색한 경계를 허물고 함께한 시간이 오가며 깊어지는 사이가 됩니다. 각자 가진 재능과 개성 있는 모습으로 어우러지는 사회생활 속에서 삶의 맛을 경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