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살, 초보사서입니다.

by 보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베란다로 나가 창밖을 내다보았다. 밤새 내린 봄비와 몰아친 바람에도 어제까지 환하게 빛나던 꽃잎들이 무사한 것을 보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아직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오늘도 의연하게 피어 있는 꽃잎들을 보며 친정엄마가 떠올랐다. 가끔 안부 전화에 별일 없다, 잘 있다. 고 하면 그 말이 참 고맙고 안심됐다. 엄마는 언젠가부터 별 일없이 살아준 것이 가장 고맙다고 말하며 내 등을 다독여주곤 했다. 일하는 틈틈이, 꽃길을 걸을 때, 계단을 오르며 엄마의 인생을 떠올려 본다.


출근 준비를 마치고 화사한 햇살이 비추는 길을 따라 도서관으로 간다. 근무를 시작한 지, 벌써 5개월을 넘어선다. 아직도 도서관으로 들어설 때면 두근거리는 마음이 설렘인지, 긴장감인지 아리송하지만, 일하는 즐거움은 확실하다. 일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고 그곳이 도서관이어서 더 좋다. 게다가 동료들과 친분이 쌓이니 기쁨이 배가 되어서 감사하다. 나의 쓸모를 찾아 헤매다가 만나게 된 도서관은 때로는 위로하는 친구로, 때로는 가르치는 선생으로, 비바람 속을 기쁘게 맞서 걸을 수 있게 해 주었고, 어두운 터널 속에서 빛을 찾아 나아가는 법을 알게 해 주었다.

나이 오십이 넘어 사서 공부를 시작했다. 사서가 되고 싶었던 것은 오래전부터인데 대학 과정을 다시 공부한다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학비도 만만치 않아서 그 값어치를 해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은 나이가 들어도 멈추지 않았다. 도서관과의 인연은 학창 시절부터 시작되었지만 `결혼 후 아이를 키우며 깊어졌다. 다정하게 마음을 내줄 여유 없이 살아온 친정엄마와의 관계는 소원했고 지방에 흩어져 사는 언니들에게도 의지할 수 없어서 나의 육아는 외로웠다. 그 외로움을 채워준 것이 도서관이었다. 불안한 미래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이 밀려올 때면 나는 언제나 도서관으로 갔다. 아이와 함께 도서관에 다니며 그림책을 보다가 그 매력에 푹 빠지기도 했다. 집 앞 도서관은 안식처이며 미래를 꿈꾸게 하는 곳이었다. 게다가 육아를 함께하며 서로 위로하는 친구까지 얻게 된 곳이 도서관이다.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요즘 도서관은 시설 면에서도 편리함을 넘어 유용하게 발전했다. 컴퓨터나 개인 노트북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안락한 소파에 앉아 책 속으로 빠져드는 시간은 마음이 온전히 풍요로워지게 한다. 무엇보다 넓은 책상에 앉아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화장실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 주변에는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산책로가 있고, 도서관 식당에서의 혼자 밥 먹기도 좋다. 이런 도서관에서 일까지 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림책의 매력에 빠져 아이들에게 그림책 읽어주는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동아리 활동을 할수록 도서관에서 일하고 싶은 욕망은 더 커졌다. 함께 봉사활동을 하던 언니의 조언으로 초단시간 일자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육아를 병행하며 일하기에 짧은 시간은 매력적이었다. 일하며, 하고 싶었던 글쓰기 교실과 인연을 맺었고 연극 활동까지 하며 도서관의 매력에 푹 빠졌다. 그러나 단기계약이어서 지속할 수는 없었다. 코로나까지 발생하면서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더 어려워졌다. 다른 일자리를 찾아야 했다.


커피를 좋아하는 것을 안 지인이 함께 바리스타 자격증을 준비해 보자고 권유했다. 그렇게 바리스타 1급 자격증을 취득하고 단골로 다니던 동네 카페에서 일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사장님의 배려로 오전, 오후, 주말과 평일, 다양한 시간대를 경험해 보았다. 인수해 볼 생각이 있냐는 사장님 말에 차마 용기를 내지 못하고 다시 실업자가 되었다. 오십 대가 일을 구하기는 어딜 가나 어려웠다. 그러고 보니 카페에서 일할 기회를 얻었던 것은 사장님의 큰 배려였던 것 같다. 단시간 근무는 주부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양질의 일자리는 당연히 경쟁률이 치열했다.


웹 서핑을 하다가 찾게 된 것은 주방 보조였는데 그것도 하루, 이틀 신청하면 잘 채용되지 않았고, 연이어 4일을 신청하니 겨우 연락이 왔다. 당차게 들어선 주방에서의 일은 생각보다 훨씬 고됐다. 주방의 환경은 전체적으로 축축했다. 비닐로 된 앞치마와, 마스크, 그리고 장화 속으로 땀이 비 오듯이 흘렀다. 체력이라면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뚝배기 그릇 몇 개 닦고 나니 손과 발이 후들거렸다. 난생처음 어지럼증을 느꼈다. 이러다 주방에서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심지어 입맛도 없어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하루도 더는 일할 자신이 없었다. 조심스럽게 이틀만 해도 괜찮겠냐고 인력 업체에 양해를 구했다. 이런 경우가 비일비재한 듯 순순히 받아주었다.


두 번째 날에는 신기하게도 적응할 만했다. 요리사가 직접 만들어준 점심 반찬은 너무 맛있었다. 일을 계속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마침, 관리자가 일정하게 나올 수 있는지 물어서 잠깐 고민이 됐다. 그때 사서교육원에 등록해 놓은 상태라서 두 가지를 병행하는 것은 자신이 없었다. 관리자에게 공부를 시작해 볼 생각이라 어려울 것 같다고 하니 그 나이에 무슨 공부냐고 했다. 나 스스로 이 나이에 공부를 시작하는 것이 맞는지 여러 차례 질문을 던지게 하는 순간이었다. 그렇지만 그런 말들에 지지 않고 도전해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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