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라 Mar 26. 2022

[책] 그러라 그래

양희은 에세이

책        그러라 그래
지은이  양희은 에세이
펴낸 곳  김영사


방송을 그만두고 노년의 긴 세월 동안 무얼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전유성 선배는 대뜸 그냥 살란다.

"여행 다녀. 신이 인간을 하찮게 비웃는 빌미가 바로 사람의 계획이라잖아. 계획 세우지 말고 그냥 살아."

p 39


미련한 성격 탓에 맞서 오는 파도를 피할 줄도 모르고 온몸으로 맞고 선 때도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래도 그래도 인생은 살아볼 만하다.

p164


꾸밈없고 기본이 탄탄한 담백한 냉면 같은 사람이 분명 있다. 자기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솔직한 사람, 어떤 경우에도 음색을 변조하지 않는 사람, 그런 심지 깊은 아름다운 사람.

p 185


빙산의 밑동이 든든해야 그 일각이 드러나는 법! 일상생활의 밑바탕, 살아 있는 이야기, 삶의 고비들이 밑에서 든든하게 받쳐주어야만 방송에서 하는 말도 살아난다.

p 228


내 부엌에서 나만의 방식으로 밥을 해 먹는 일, 제철 채소를 사다가 나물을 무치고, 맑은 국을 끓이고 제철 생선 두어 마리를 맛나게 굽는 일, 그게 무슨 대수냐고 웃을지는 몰라도 내게는 중요하다. 일 바깥의 일상을 소중히 하는 것, 그것이 내 일의 비결이다.

p229






인생의 고비고비를 넘어온 선배님들은 하는 말마다 마음이 어쩔 수 없이 뭉클 해지는 어록이 된다.



양희은이라는 가수를 모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잘 안다고도 할 수 없는데 요즘 티브이에 출연했을 때 모습이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이웃집 언니 같아서 눈여겨보게 된다. 예능에서 많은 후배들이 그녀를 흉내 내는 '그러라 그래', 나 '그럴 수도 있지.'는 어찌나 마음에 쏙 와닿는지 속이 다 시원해진다. 누군가의 입으로 전해 듣는 그녀의 목소리가 위로가 되었다. 그녀의 노래는 극성팬이 아니더라도 어디선가 음악이 흘러나오면 가사가 입에서 절로 흘러나온다.  에세이를 출간했다고 하니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표지를 보니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편안해졌을 시간이 느껴져 흐뭇한 웃음이 나온다.


가수 아이유의 추천의 말을 읽고 있으면 이 언니가 정말 후배들 앞에 어떤 모습으로 서 있어 주었는지 짐작이 가고 만다.


나는 내 목소리는 믿지 않아도 선생님의 목소리는 믿는다. 몇십 년의 세월 동안 같은 곳에서 노래로, 말로, 생각으로 약속처럼 자리해준 사람에 대한 자연스러운 신뢰일까... 중략... 선생님의 목소리로 듣는 그 인생은 너무나 고된데, 희한하게도 지레 겁먹어 도망가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더 씩씩하게 맞서고 싶어 진다.

 - 아이유 (가수) 추천의 말 중에서 -


책을 읽고 보니 그녀가 불렀던 노래와 그 사연에  다시 관심을 가지게 된다. 돈을 벌기 위해 무대에 서며 만났던 가수들과의 인연, 끈질긴 레코드 사장과의 만남, 세종로를 지나 가회동 집까지 걸어가며 큰 소리로 노래 부르던 사연, 어려울 때 아무 말 없이 도와주었던 손길들, 서른 살에 시한부 선고를 받고도 이제 것 꿋꿋하게 서 있는 모습, 그리고 거친 파도를 지나 한낮의 축복 같은 햇빛 아래에서 평안을 누리는 그녀의 이야기가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가슴 저리면서도 다정하다. 그중에서도 "축복 같은 한낮" 이야기가 좋았다. 제목에서부터 따사로운 한낮 같은 인생이 느껴진다. 태풍이 지나간 뒤 만날 수 있는 맑게 개인 눈부신 하늘과 한낮의 햇빛, "뭐라 말할 수 없는 행복을 그 친구의 뜰 안에서 맛볼 수 있었다."는 그녀의 기쁨이 전해지는 듯하다.

심한 낯가림을 극복하며 새롭게 진행하고 있는 "뜻밖의 만남" 프로젝트, 후배 음악가들과 화음을 이루며 만들어 가는 노래가 신선하고 아름답다. 각 가수들의 색깔에 맞추어 주도권을 온전히 맡기고 함께 하는 도전이 꽤 근사해 보인다.


매거진의 이전글 [책] 에세이 만드는 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