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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 Mar 29. 2022

[책] 알로하, 나의 엄마들

사진신부 이야기

책          알로하, 나의 엄마들
지은이    이금이
펴낸곳    창비


매봉산 자락 골골이 들어앉은 동네들에선 우물 속처럼 하늘만 빼꼼 보였다.
<p7>


젊은이들 뒤로 파도가 밀려오고 있었다. 그들은 파도를 즐길 준비가 돼 있었다. 바다가 있는 한 없어지지 않을 파도처럼, 살아 있는 한 인생의 파도 역시 끊임없이 밀어닥칠 것이다. 함께 조선을 떠나온 자신들은 아프게, 기쁘게, 뜨겁게 파도를 넘어서며 살아갈 것이다. 파도가 일으키는 물보라마다 무지개가 섰다. <p334>



"더 나은 삶을 꿈꾸며" 이민선에 오른 이민자들에게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쓰레받기로 쓸어 담을 수 있는 돈"이 아니라 "뙤약볕과 칼날처럼 날카로운 잎을 가진 사탕수수와 채찍을 휘두르는 관리자가 있는 냉혹한 현실이었다."

 -작가의 말 중에서-


작가는 한인 미주 이민 100년 사를 다룬 책을 보던 중에 눈길을 끈 한 장의 사진에서 이 이야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나도 어디선가 이야기로만 들어봤던 사진신부에 얽힌 사연과 그들의 험난했던 여정을 이 책을 통해 자세히 알게 되었다.


일제 강점기 때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으로 일하러 간 남자들이 중매쟁이를 통해 보내온 사진만 보고 결혼한 "사진신부"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들은 이민 1세대이며 독립운동가들이었다. 나라가 힘이 되어 주지 못하던 시절 가난과 핍박과 여자에게 주어진 굴레를 벗어나고자 했던 조선의 어린 신부들은 운명을 건 여행을 시작했다. 양반 출신이었지만 가난에 굶주리던 버들, 병든 남편이 일찍 죽어 어린 나이에 과부가 되어버린 홍주, 무병을 앓다가 죽어버린 엄마 없이 무당인 할머니와 손가락질을 받으며 살아가던 송화는 하와이에 도착하자마자 깨져 버린 꿈을 다시 일으키고 말겠다는 다짐으로 낯선 환경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간다. 나이 든 남편과 가정을 이루어 아이도 낳고 힘든 노동을 이겨가며 자신의 삶을 일으킨다. 그뿐 아니라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도 힘을 보탰다." "그들은 선구자이며 개척자였다."


지금도 한 자리에 정착한 뒤 이웃을 사귀고 친해지면 이사를 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옛날 빼꼼 하늘만 보이는, 산이 든든하게 감싸주던 고향을 떠나는 것이 남자도 아닌 여자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것도 사진으로 만 본 남자와 결혼을 하기 위해 집을 떠나 석 달이 걸려 하와이까지의 여정을 감행하게 한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골 달픈 현실이 밀어낸


"어덴들 여보다 안 낫겼습니꺼." <p27>


사진 한 장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하와이 여러 지역, 호놀룰루, 와히아와, 카후쿠, 마우이 등의 풍경과 그 시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는 것이 놀라웠다. 어떤 소설이나 역사적 배경이 바탕이 된다면 그러하겠지만 방대한 조사와 인터뷰를 통해 이루어진 이야기가 아닐까 상상해본다.

작가는 하와이에는 몇 번이나 다녀왔을까? 얼마 동안 머물렀을까? 궁금해진다.


하와이 교민들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자금을 모금하는 가운데 아랫동네와 윗동네로 나뉘어서 갈등을 겪었던 일들은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건 자신의 신념만을 따른 갈등이 어디서나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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