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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 Dec 13. 2022

오지랖

수필


"하하하 여기까지 다 오고 너 오지랖이 너무 넓은 거 아냐?!"


병실에 들어 선 그녀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놀람과 반가움으로 나는 이렇게 말하며 큰소리로 웃고 말았다.  순간 아차, 하는 마음이 조금 들긴 했지만 그녀는 별로 개의치 않는 듯했고 나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녀의 속마음이 상했다는 것은 머지않아서 알게 되었다.


그녀는 내 남편의 죽마고우의 동생의 부인의 언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아는 사람'정도로 말해 둘 수 있겠다. 우연히 나이가 같아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나는 그녀가 좋았다. 편했다.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긴 하지만 어느 정도 죽이 잘 맞기도 했다. 그렇다고 따로 연락해서 단둘이 만나거나 하는 사이는 아니었다.


그녀는 병실 간의 침대에 앉더니 엄마가 다려 주었다며 보온병에서 홍삼을 또르르 따라 남편에게 한잔, 또 나에게 한 잔 주었다. 수술 뒤엔 홍삼이 최고라고 하면서.

남편은 간암으로 투병 중인 시아버지께 간이식 수술을 한 상태였다. 그녀는 경기도에서 서울 대학로까지 한 시간은 넘게 걸렸을 그 먼 길을 홍삼을 싸들고 혼자서 와 주었다. 너무 고마운 일이었다. 나는  고맙기도 하면서 남을 챙기는 그 넓은 마음이 부럽기도 했다. 평소에 오지랖 넓은 사람을 동경했더랬다.

사람에게 관심을 가져 주고 필요한 것을 선물할 줄 아는 마음을 나도 가지고 싶었다. 그런데 나에게 그런 일들은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피곤한 일이어서 쉽게 지치곤 했다.


그녀는 나를 알게 되고 가끔 그녀의 동생과 우리 집에 놀러 오기도 하고, 예뻐서 샀다며 딸아이 머리핀이나 액세서리를 사주기도 했다. 나에게도 그냥 샀다며 빨간색 끈으로 된 초크 목걸이를 선물해 주었는데 그런 것들-그냥 주는 선의의 선물-에 익숙하지 않았던 나는 이게 뭐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받아 들었다. 그리고 아주 나중에, 나중에서야 그 선물들을 바라보며 선물을 준 사람의 마음을 생각하게 되었다. 선물 속에 담긴 그 사람의 마음을 읽고 또 읽었다. 낡은 선물들을 버리지 못하고 서랍 속에 간직해 두면서 때때로 외로울 때 그것들을 바라보며 허한 마음을 달랬다.


병원에서 만났던 날 이후로 그녀의 얼굴을 보기 힘들었다.  어느 날 문득 그녀가 떠오르던 날, 그때 그 말에 마음  상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나서 인터넷에서 '오지랖'이라는 단어를 찾아보았다.


오지랖은 웃옷이나 윗도리에 입는 겉옷의 앞자락을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옷의 앞자락이 넓으면 몸이나 다른 옷을 넓게 겹으로 감싸게 되는데, 간섭할 필요도 없는 일에 주제넘게 간섭하는 사람을 비꼬는 말이라고 한다. 그런데 오지랖이 넓다는 것은 그 옷으로 감싸야하는 가슴 또한 넓다는, 즉 남을 배려하는 마음의 폭이 넓다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니 그런 점에서 본다면 오지랖이 넓은 것은 미덕일 수도 있겠다. 귀찮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한다면 경계해야 할 일이기도 하지만 어느 정도의 오지랖을 부릴 줄 아는 사람이고 싶다.


그녀의 동생도 다정함이 남달랐다. 함께 식사를 할 때면 내 앞 접시에 맛있는 반찬들을 가져다주기도 하고, 쌈을 싸서 입에 넣어 주기도 했다. 낯을 많이 가리고 무뚝뚝하던 나는 그런 것들이 익숙하지 않아서 그렇게 좋은 표정을 하지 않았을 것 같다. 얼마 전 그들은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그녀들이 떠난 자리, 함께 앉아 웃고 나누던 식탁, 이제 나 혼자 앉아 있다. 빈자리 사이로 시린 바람이 쓸쓸하게 불어온다. 사람들과 함께 즐겁고 다정함을 즐겼던 그녀들의 넓은 배려와 사랑이 그리워진다.


언젠가 그녀들을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때에는 내가 상추 위에 잘 구워진 고기와 마늘과 파채와 된장을 올려 먹음직스럽게 쌈을 싸서 입속에 넣어 주고, 오리를 가자하면 십리도 함께 가주고, 감기라도 걸리면 따끈한 설렁탕과 약봉지를 들고 그녀의 집으로 달려가는 오지랖을 좀 부려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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