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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 Feb 01. 2023

대단하지 않은 하루

일상 에세이



https://www.hankyung.com/opinion/article/2018090688081


통계청에 따른 우리나라 기대수명은 2021년생이 83.6세라고 한다.


“2015년에 태어난 아이는 142세를 살 것이다.”

이 말은 한경바이오헬스산업 콘퍼런스 2018에서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노화제어연구단장이 발표한 내용이다. 2017년에는 실제로 146세 생일을 맞은 인도네시아의 할아버지의 장수 비결이 언론에 소개되기도 했다. 


100세 시대를 뛰어넘어 그 이상을 사는 것이 어렵지 않은 시대가 되어 가고 있다. 중장년층은 스스로를 청년이라 칭하고 활동 또한 청년처럼 왕성하게 하고 있다. 제2의 직업을 찾거나, 취미활동이나 봉사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기도 한다.


사진 네이버 포토뉴스 (모델 김칠두)


시니어 모델로 잘 알려진 김칠두 님은 평생 하던 국밥집을 그만두었을 때 모델이 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62세에 모델로 데뷔했다. 그 모습을 보니 나도 뭔가 후회 없이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새로운 일에 도전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다.


사십 대까지는 어려서는 용기가 부족해 못했던 것들을 뭐든지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오십에 접어드니 다시 세상에 주눅이 들고 말았다. 제2의 직업이라는 것을 가져야 고령화시대에도 버틸 수 있을 것이라는 현실적인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저것 생각해 보다 고령화시대에 발맞추어 노인 관련 직업을 찾아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친구의 권유로 ‘치매예방지도사’에 대해 공부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내 나이도 오십이고, 몸도 여기저기 예전 같지는 않지만 늙는다는 것을 실감하기는 어려웠다. 치매라는 병도 당연히 나에게는 오지 않을 일로 여겨졌다. 하지만 시간은 흐르고 나도 늙음을 받아들여야 할 시간이 올 것이고 그렇다면 잘 늙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치매를 배우는 것은 늙음을 이해하고 건강한 삶을 사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앞으로 치매 예방 교육이 국가적으로 적극적인 사업이 될 예정이라고 하니 나에게도 도움이 될 만한 교육이었다. 


치매는 뇌 손상에 의해 나타나는 증상이다. 치매의 종류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서 알츠하이머가 70%를 차지한다. 알츠하이머는 뇌에 독성 단백질이 비정상적으로 축적되어 발생한다고 한다. 기억력과 인지능력이 점점 약화되는 병이다. 치매를 배우고 나니 관심이 없었던 드라마를 다시 보게 되었다. 


생각하지 못했는데 여러 드라마에서 치매를 다루고 있었다.


감우성 김하늘 주연의 <바람이 분다.>

장미희 유동근 <같이 살래요>

김혜자 한지민 주연의 <눈이 부시게> 등의 드라마가 치매를 소재로 했는데


그중에서 <눈이 부시게>는 알츠하이머에 대하여 잘 다루고 있었다. 기억을 잃어가는 주인공에게 아들이 하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생각이 잘 나지 않는 것은 기억하려고 애쓰지 마세요. 행복한 것만 기억하세요.’ 


그리고 주인공의 마지막 내레이션이 마음을 울린다.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에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콤한 바람,
해질 무렵 우러나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많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엄마였고, 누이였고, 딸이었고, 그리고 '나'였를 그대에게.


이 대사는 김혜자배우님이 한 시상식에서 낭독하기도 했다.


평범했던 하루를 회상하며 행복에 젖는 주인공의 마지막 대사는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나도 어제와 별로 다르지 않아서 더 편안하고 좋은 하루를 떠올려 본다.


오랜만에 비가 내린 어느 날 산책을 나갔을 때다. 돌다리 사이로 흐르는 잔잔한 물소리, 빗물이 톡톡 떨어지는 소리, 낙엽을 밝으며 걸을 때 들리는 사그락거리는 기분 좋은 소리, 딸랑거리는 자전거의 경적소리가 거리를 채운다.


누구에게는 음악이 되고, 누구에게는 시가 되기도 하는 거리의 풍경들, 산책을 하고 나서 마시는 아침 커피 한잔.

‘아 정말 행복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오늘은 또 애들 반찬 뭐 하나?’이런 고민들도 즐겁기만 하다.



대단한 것은 없지만 아름다운, 하루하루 평범한 삶을 지켜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보통사람들의 삶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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