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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 Jan 26. 2023

제발, 근육이라고 말해줘

필라테스 체험기


눈이 솜사탕처럼 나무 위에 내려앉는다. 겨울 눈꽃이 피었다. 뽀드득뽀드득 눈을 밟으며 오랜만에 필라테스를 하러 갔다.



"거북목에 척추가 비대칭입니다. 무릎 관절은 퇴행이 시작되었군요."

어느 날 정형외과를 찾았더니 들은 말이다.
예상은 했지만 조금 충격을 받았다.


병원을 찾게 된 것은 잠을 잘 못 잤는지 왼쪽 어깨를 타고 목에서 머리까지 찌릿찌릿한 증상과 함께 뻣뻣해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근육이 아프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찌릿한 느낌이 머리 쪽까지 이어지자 겁이 덜컥 났다. 뇌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니겠지? 마침 주말이 되었고 병원에 가기에는 늦은 시간이었다. 진통제라도 먹어 보려고 약국에 갔다. 약국에서는 근육통 약을 주면서 스트레스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큰 병이 아니길 바랐다. 약을 먹고 나니 다행히 통증은 잦아들었다.


월요일이 되어서 정형외과를 찾아갔다. 엑스레이 사진을 보며 의사는 빠르게 진단을 내렸다. 거북목에 등이 휘었고 척추는 비대칭이며

신경을 눌러 찌릿한 증상이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척추측만증에 거북목이라니 아이들한테 휴대폰 많이 하면 거북목 된다고 잔소리했는데 내가 그렇게 되었다. 물리치료를 받고 처방받은 약을 먹고 나니 그런대로 한동안은 살만했다.


얼마 뒤 무릎이 시큰거리는 것이 신경 쓰여 내 연골이 벌써 닳아 없어지고 있나 겁이 나서 또 정형외과를 찾았다. 관절의 퇴행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제 겨우 오십에 접어들었는데 너무 이른 몸의 변화가 당황스러웠다. 무릎에 주사도 맞고, 도수치료도 할 수밖에 없는 나이가 된 것인가 침울했다. 주변에서 자주 들어 본 도수치료나 연골주사는 효과가 있기도 하지만 비용도 만만찮고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병원을 잘 가지 않는 나도 이제 병원과 친해져야 할 때인가 보다.


나이가 들면서 근감소와 근육통, 퇴행성 관절염 등등 몸의 모든 관절과 뼈마디가 쑤신다. 배출되지 못하고 뭉쳐버려 하나의 덩어리가 된 몸뚱이는 근육인지 살인지 구분할 수가 없다. 사실 근육이라고 우길만한 것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지 모르겠다. 운동이라고 하면 주로 걷는 것만 했는데 근육 강화에 도움을 주고 재활효과도 있다는 필라테스를 한 번 해볼까 생각했다. 허리와 어깨가 좋지 않아 고생하는 친구와 필라테스 강습소 두어 군데 상담을 해보고 집에서 가깝고 가격이 싼 곳을 골랐다. 시설은 비슷비슷한 듯했다. 둘이 함께, 이벤트 기간을 따져 1회 만원 정도의 가격으로 등록을 했다. 제법 저렴한 가격이라고 한다.


필라테스 기구 바렐 체어



필라테스 수업은 매 시간 예약을 하는 방식부터 새로웠다. 그런데 수업 시간을 예약하는 것이 만만치 않았다. 강좌가 열리는 시간을 잘 파악하지 못해서 예약을 몇 번 놓치고 말았다. 원하는 시간에 꾸준히 하고 싶었는데 시간과 요일이 들쑥날쑥했다. 처음에는 여러 선생님들을 경험해 볼 수 있어서 괜찮았지만 꾸준하게 운동효과를 보려면 일정한 간격과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정신을 바짝 차려 화, 목 오전으로 시간을 잘 맞추어 예약을 했다.


필라테스 첫 수업


첫날은 선생님의 구령에 맞추어서 옆사람을 보며 어정쩡하지만 열심히 따라 했다. 누가 봐도 초보티가 났다. 동작은 제법 흥미로웠다. 기구를 사용하니 맨손으로 하는 것보다 재미가 있었다. 동작도 다양하게 바뀌었다. 사실 준비운동만으로도 힘이 들었다. 처음 유산소가 가장 힘들었다. 그저 앞에 발판을 두고 계단을 오르듯이 걷기 10회, 빠르게 걷기 10회를 오른쪽 왼쪽 번갈아 했을 뿐인데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정신없이 동작을 따라 하다 보니 한 시간이 후딱 지 나갔다. 소독제로 각자의 기구를 닦고 문을 열고 나오는데 다리가 후들거렸다.


유산소 운동에 사용한 박스


다섯 번째 수업


함께 다니던 친구가 어깨가 좋지 않아 계속할 수 없게 되었다. 혼자서도 뭐든 잘 하지만 같이 하던 것을 혼자 하려면 허전하기 마련이다. 운동  가기 전 함께 마시던 따뜻한 커피 한 잔도 생각나고, 운동하고 난 후 후들거리는 다리를 보며 깔깔거리던 것도 이제는 추억의 한 페이지가 되어 버렸다.


한 번은 오후 2시 강좌를 예약했다. 시간에  맞추어 학원에 도착하니 아침 시간과는 다르게 고요했다. 점심시간을 사이에 두어서 오전 수강생들은 모두 빠진 모양이다. 한가한 교실에 들어서니 막상 어느 자리에 앉아야 되나 머뭇거리게 됐다. 거울 앞에 앉았다가 다시 구석자리에 조용히 앉았다. 운동이 시작되자마자 자리를 잘 못 잡았다는 것을 알았다. 빈 공간도 많은데 바로 앞자리에 사람이 있어 서로 민망한 모양새가 되었다. 시선을 자꾸 천장으로, 창밖 저 멀리로 가져갔다.


기구의 형태가 처음 보는 것이다. 강사도 다르다.

동작이 다양하다고는 들었는데 다섯 번째까지 중복되는 것이 없다는 것이 놀라웠다.

시작할 때 유산소로 시작하는 부분이 여전히 가장 힘들었다. 숨은 턱까지 차오르고 허벅지는 불타는 듯했다. 동작이 끝나고 잠시 쉬는 시간은 꿀맛 같았다. 언제 그랬냐는 듯 호흡은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곧 다음 동작이 이어졌다. 오늘은 다리 근육을 주로 사용했다. 복근과 대퇴근육을 이용한 다리 찢기와 플랭크를 했다.


선생님 무리입니다.


앗 너무 무리를 했나 보다. 다리를 열심히 찢고 나서 들어 올리기 동작을 하니 왼쪽 고관절이 말을 듣지 않는다. 내 다리인데 내 다리가 아닌 것 같았다. 좀 더 올려보라는 선생님 말씀에 도저히 안 되겠다고 했다. 민망했다.


살살하길 잘했어!


길에서 3년 만에 지인을 만났다. 어제 본 것처럼 반가웠다. 모습도 거의 변함이 없다며 우리는 서로를 위로했다. 나는 그런대로 비슷한데 살이 조금 붙은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운동을 해서 그렇다고 했다. 필라테스를 시작하고 근육이 생긴 것이라고 했다. 믿는 눈치다. 그러더니 자신도 한동안 필라테스를 했다고 했다. 보통 주 2회 운동을 하는데 자신은 3회를 했고, 나는 쉬는 시간도 주고 강도가 조금 약한 선생님을 자꾸 찾았는데 지인은 가장 강도가 높은 선생님에게 아주 열심히 했노라고 했다. 운동 하나를 해도 이렇게 성격이 나온다. 열성적으로 따라 하다가 관절이 나빠져서 운동을 쉬게 되었다고 한다. 속으로 생각했다. '살살하길 잘했어!'


'필라테스를 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지만 아직 그 효과를 보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일주일에 1회 정도밖에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체중이 불어나면 불어났지 빠지지를 않는다. 근육 때문 일 거라고 근육 때문 일 거라고 스스로에게도 보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닌다.


아 그래도 어디 가서 필라테스로 변한 몸을 내가 알아채고, 남들이 알아볼 정도는 해보아야지 않겠냐고 스스로를 다잡고 오늘도 눈길을 걸어 운동을 하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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