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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 Feb 07. 2023

하나, 둘, 셋 찰칵!

뜻밖의 기쁨


어느 날 집 앞 개천을 산책하다가 뜻밖의 기쁨을 만나고 이 문장이 생각났습니다.



웃음 속에 감춘 칼과 마음속에 품은 화살과 가슴속에 가득 찬 가시가
한순간에 사라짐을 느낀다. 항상 나의 뜻을 삼월의 복숭아꽃 물결처럼 하면
물고기의 활력과 새들의 자연스러움이 모나지 않은
 온화한 마음을 갖도록 도와줄 것이다.

                 -이덕무 [선귤당농소] 복숭아꽃 붉은 물결/ [문장의 온도] 한정주 엮고 옮김/ 다산초당-




단단히 얼어붙은 안양천에 폭신한 이불처럼 눈이 내려앉았다. 별거 없는 집 앞 개천가를 걷노라면 매일 비슷하면서도 새로운 것들을 발견해 낸다. 천둥오리들이 옹기종기 모여 물고기를 잡고 줄지어 체험 쳐 달리거나 어울리는 모습을 보면 나를 위해 재롱이라도 부리나 싶다.


멀리 고고하게 서 있는 왜가리는 언제 보아도 반할 모습이다. 사진에 아무리 담으려고 해도 그 멋진 모습이 담기지 않아 줌을 당겨보았다가가 다시 보아도 역시 눈으로 보는 것만 못하다. 어느 날은 징검다리를 건너다가 물빛이라도 찍어 보려고 가만히 쭈그려 앉아 이리저리 카메라룰 움직여 보는데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진다.


내 눈앞에 커다란 왜가리 한 마리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수풀 속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만 깜짝 놀라 개천으로 빠질 뻔했지만 이런 기회를 어찌 놓치겠는가. 숨까지 멈춰가며 왜가리가 행여 날아가지나 않을까 조바심을 누르고 가만히 카메라 앵글을 가져다 대고 셔터를 눌렀다. 셔터 소리가 고요함을 깨 왜가리가 날아가 버리기라도 할까  단번에 여러 장을 찍었다.      


처음에는 인간의 냄새를 맡고 자신의 모습을 수풀 속에 숨겨 놓은 채 숨도 쉬지 않고 몸을 감추고 있는 줄 알았는데 사냥을 하느라 온통 신경이 먹잇감에 쏠려 나를 차마 인식하지 못한 모양이다. 운 좋게 먹이를 잡는 모습까지 포착하고 나는 기분이 좋아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물속에서 금 조각이라도 발견한 기분이었다.      


평소에 왜가리랑 친해지고 싶어도 조금만 가까이 가면 후다닥 날아가버려서 아쉬웠다. 어떻게 하면 너희랑 친해질 수 있겠니 혼자 속으로 외치기도 했다. 조금은 친해진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하며 흐뭇하게 산책을 했다.   


평소에 멀리서만 바라볼 수 있었던 모습
바로 눈앞에서 만남


한 번은 초록빛 천둥오리가 놀고 있는 곳으로 갔다. 수컷과 암컷들이 용기종기 모여  인간을 거북해하지 않는지 비교적 가까이까지 갈 수 있었다. 오늘은 어떤 귀여운 모습을 보여주려나 가만히 보고 있는데 한 마리가 엉덩이를 하늘로 올리더니 머리를 물속으로 넣었다. 물고기를 잡는 모양이었다.


주둥아리를 살짝 물속에 넣는 모습은 많이 보았지만 엉덩이가 하늘로 향한 모습은 처음이라 웃기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놓칠세라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오동통한 엉덩이와 오리발이 하늘로 향하고 머리는 물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진기하면서도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모르겠다. 그러더니 그 옆에 있는 한 마리가 또 같은 모습으로 사냥을 한다. 재미있어서 가만히 돌에 앉아 몇 번이고 보고 또 보았다.


나도 모르게 ‘하나, 둘, 셋’ 구령을 붙이니 듣기라도 한 냥 그 소리에 맞추어 포즈를 취해 주었다.  

하나  셋 찰칵, 하나 둘 셋 찰칵. 이렇게 혼자 웃고 사진을 찍으며 오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저녁에 잠들 때 밀려오던 걱정들, 남은 생은 어떻게 살아갈까 막막한 수수께끼로 가득한 삶에서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을 받아들이며, 아침에 먹은 따뜻한 밥상을 생각한다. 걷기에 딱 좋은 따뜻한 햇살과 바람을 느낀다. 자연의 작은 움직임에 설레는 마음, 단순하고 소박한 것을 기뻐하는 삶을 생각해 본다.


오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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