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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 Good Jul 27. 2018

대구역

삶의 정거장을 찾는 사람들

1994년 이래 이렇게 뜨거운 날은 처음이라는 뉴스 보도가 연일이다. 그만큼 폭염이 대세 아닌 대세를 이루고 있다. 내 어릴 적 기억에 대구는 뜨겁기로 유명했다. 뉴스 프로그램에서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달걀 프라이를 시현하는 정도로 그 더위는 대단했다. 그 당시 대구는 나에게는 그저 먼 어느 지역이었다. 정말 멀었다. 한번 가려면 몇 시간을 버스를 타야 하는지, 휴게소는 또 몇 번을 들려야 하는 그런 곳이었다. 그렇게 멀게만 느껴졌던 대구를 이제 2시간이면 간다고 생각하니, 지역도 거리도 변함이 없는데 또 무언가가 우리 인생의 시계를 더 빠르게 돌려놓은 듯하다.      


대구역에 도착해서 ‘동대구역’ 표지판을 보지 못한다면, 사실 어느 역인지 알기가 힘들어졌다. 그저 지난주에 갔던 대전역과 역사 내의 전경이 별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비슷한 건물에 식당과 패스트푸드점, 지난주 대전역에서 먹던 것과 비슷한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한다. 기차표를 확인하면서, 여기가 대구란 걸 새삼 환기시킨다. 매번 출장을 가면 역에 도착해서 먹고, 택시 타고 어디론가 가고, 다시 택시 타고 역으로 돌아오는 반복되는 일정이 어쩌면 무슨 역인지 그렇게 중요하지 않게 느꼈는지 모른다. 그저 내가 가야 할 길에 잠시 들르는 곳처럼 말이다. 매번 보는 역사 내의 전경이나 환경의 변화만이 가끔 공사가 끝나면 느끼는 정도이다. 그마저도 모든 역사의 편의시설이 점점 비슷해 가니 웬만한 관찰력이 아니면 구분하기도 쉽지 않을 정도다.     


어느 역이든 내리는 사람이 있고, 타는 사람이 있다. 여기가 출발역인 사람들과, 여기가 도착역인 사람들이 서로 뒤엉켜 역의 익숙한 풍경을 만들어 간다. 누가 떠나는 사람인지 누가 도착한 사람인지는 사실 구별하기 힘들다. 그게 바로 역의 익숙한 모습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떠나는 아쉬움이 묻어나고, 어떤 사람에게는 돌아오는 정겨움이, 그리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지나가는 길에 잠시 들러 국수 한 그릇 먹는 쉼의 여정이 묻어나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어릴 적 ‘역’은 늘 바쁜 사람들의 분주함에 근처 식당은 늘 만원이고, 불친절하고, 뭔가 다시 안 볼 사람처럼 그렇게 서로 밥을 팔고 밥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모두가 들르는 곳이지만, 아무도 정착하지는 않는 곳, 바로 역이다. 우리의 삶에서 사람들은 정착과 안정을 찾기 위한 여정이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단지 방법이 다를 뿐, 결국 그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과정의 연속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삶이 정착되는 장소의 안정, 그렇게 고향을 찾기도 하고, 고향을 떠나기도 하고, 그 삶의 장소로 인해 사람들은 서로 분열되기도, 서로 단합되기도 한다. 그만큼 누군가가 살아가는 그 삶의 터전을 이루는 장소는 삶에 큰 부분을 차지한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우리의 삶의 여정이라는 연속선상에서 그 ‘장소’라는 것이 오늘 내가 들른 대구역 같다는 생각이 든다. 쉼 없이 들락거리는 사람들의 분주함으로 스쳐 지나가는 장소 말이다. 자의든 타의든 그러한 장소를 옮기는 일은 수없이 반복된다. 옮기는 이유가 더 나은 삶의 터전을 찾아 떠나는 것일 테지만, 그 목적에도 불구하고 늘 그 물리적인 터전은 쉼 없이 바뀌어 간다. 우리가 기차역을 수없이 지나쳐가면서 결국 내가 가는 목적지를 찾아가는 여정과 같이 말이다. 결국 물리적인 삶의 터전이나 장소가 변화되는 과정은 그 최초의 장소가 어디든, 최후의 장소가 어디든 모두가 그저 지나쳐 가다 들르는 ‘역’에 불과한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삶의 여정은 어떤 역에서도 끝날 수 없으니 말이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 기차의 종착역도 결국 우리가 가야 하는 종착역이 아니라, 내가 잠시 탄 기차의 승차권의 목적지일 뿐이다. 삶을 살아가는데, 삶이 계속되는 가운데 우리가 정착되고 안정되어 가는 모든 것들이 상업적인 울타리에 갇혀 모든 것들이 물질적인 가치에 의해 만들어지는 세상이다. 안정은 주택의 구매가 되어버리고, 경제적인 자유만이 삶의 안정으로 정의되는 세상인 것이다. 모든 목적지에 승차권을 갖고 타는 건 맞지만, 기차의 정해진 정거장이 우리의 목적지는 아니다. 내가 가는 삶의 길에 지나쳐가는 것들에 매몰되어 나의 삶의 목적지들이 어느 새인가 기차의 정거장이 적힌 노선표에 맡겨지고 마는 삶의 모순. 오늘 대구역도 지난주의 대전역도 나에게 늘 똑같은 풍경인 이유다.      


오늘 당신의 승차권은 어디를 향하고 있나요? 혹시 승차권을 못 끊었다고 해도 당신의 삶의 여정이 멈추는 건 아닙니다. 목적지가 없어진 것도 아닙니다. 당신이 가야 할 곳이 하늘을 날아야 할 수도, 바다를 건너야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너무 연연해 마시기 바랍니다. 누구나 타고 내리는 정거장의 분주함에 내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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