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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 Good Jul 16. 2018

시간관리의 속임수

시간을 '관리'하려는 어리석음

서울에서 양평으로 온지도 몇 달이 지나가고 서울과 시골(?)을 오가는 풍경에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간다. 기차 탄 기분으로, 지상으로 가는 지하철을 타고 서울을 향하는 차창으로 보이는 장면들은 매일의 반복임에도 반복되지 않는 느낌이다. 계절이 바뀌면서 숲의 모습이 바뀐다고는 하지만, 하루하루 변해가는 모습은 내가 알지 못함에도 매일 같이 보이지 않지만 느껴지는 뭔지 모를 새로움. 


아이들 세명이 초등학교, 유치원, 어린이집을 다닌다. 특히, 둘째 아이는 첫째와 같은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에 다니다 보니 형이랑 거의 같은 생활권에서 먹고(급식도 같이 먹고) 놀고(같은 운동장에서 놀고) 한다.  첫째 아이가 둘째 유치원 가서 동생 친구들 데리고 함께 놀기도 하고, 동생을 직접 집으로 데려오기도 한다. 뭐 한가족 느낌이다. 이게 또 서울과 뭔가 다른 매력인지도 모르겠다. 


학기초에 맞추어 학교에는 큰 행사가 있다. 바로 봄이 시작되는 시기의 '모내기'다. 서울에서의 '체험'이 아니라 진짜 심는다. 심어서 추수까지 가는 '실전'이다. 엄마들의 손이 바빠지고, 아이들의 모내기 심는 손이 가지각색이다. 바람 불면 날아갈 듯 하늘거리는 모내기에 아이들의 손에는 힘이 잔뜩 들어간다. 모내기의 추수 때를 알기나 하듯이 알곡이 가득한 벼라도 된 듯 한 올 한 올 힘주어 심는 아이들의 모습.


이제 아이들은 학교와 유치원을 오가는 일상에서 보이는 그 변함없어 보이지만 그 매일의 작은 변화를 겪고 있을 작은 모내기들을 지켜볼 것이다. 그러다 언제 그랬냐듯 부쩍 알곡이 실한 벼가 저 논을 가득 메울 때 오는 뿌듯함과 기쁨은 그 모내기를 심었던 작은 손이 불끈 쥐어질 정도로 벅찬 기분일지 모른다. 


그런데, 도대체 추수 때 우리가 보는 저 알곡이 실한 벼를 만든 것은 무엇인가? 모내기 심은 아이들의 조막만 한 손인가? 아니면 열심히 자라는 과정에 밤이나 낮이나 변함없이 들려오던 농부의 발자국 소리인가?


그것은 작은 모내기가 알곡이 실한 벼가 되기까지 꼭 필요한 '시간의 흐름'이다. 아무도 손댈 수 없는 절대적인 '시간'의 '흐름'.  


수많은 자기개발서에서 빠지지 않는 '시간의 관리'는 누구나 그 제목만 봐도 솔깃해지는 말이다. 난 왜 시간관리가 되지 않을까? 하면서 나 역시도 무수한 시간관리 책을 뒤적이던 때가 있었다. 왠지 될 것 같은데,, 2% 부족한 내 현실을 채워줄 그 묘안을 사람들은 갈망하고 있는 것이다. 그 목적을 잊은 채 말이다. 


자연은 '시간'을 관리하지 않는다. 시간은 주어진 축복이자 시간의 흐름으로 자연은 태동하고 변화하고 결실을 맺으며 또 소멸한다. 늘 시간의 흐름 안에서 변화하지만 사람들은 이내 인식하지 못한다. 사람들에게 시간의 흐름이란 무언가 이루어내고, 무언가 바로 변해 보이는 즉각적인 결과물이 나오는 과정이자 수단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조용하고 지겨우리만큼 느긋한 시간의 흐름을 온전히 깨닫지, 느끼지 못하고 삶을 살아가고 있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같은 시간에 보다 많은 일을 하고, 그 시간 동안에 보다 많은 것을 이루고 싶은 사람들의 '시간 관리'의 목마름은, 사막의 신기루와 같은 허구 일지 모른다. 아니다 속임수다. 우리의 삶은 그렇게 지금도 쉼 없이 가고 있다.  변화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매일의 작은 변화로 '시간의 흐름'의 대 자연의 법칙데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시간의 '연속'된 연장선상에 함께 흘러가며 존재한다. '연속'하여 흘러가는 자체가 바로 우리의 삶인 것이다. 시간을 '관리'할 수 있을 것 같은 엉뚱한 가설 아래, 우리의 삶은 계속해서 흘러가고, 아이들이 심은 모내기가 훌쩍 자라 벼가 될 때 까지도 우린 아직 너무 작은 모내기를 심는 것이 눈에 차지 않는다. 내가 무언가를 이룬다고 생각하고, 내가 무언가를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믿은 나머지 '시간의 흐름'의 절대적인 자연의 법칙을 간과하고 만다. 


모내기가 자라 벼가 될 때까지 농부의 수고가, 아이들의 모내기 심는 열정이 그 벼를 자라나게 할 수 있다면, 시간은 관리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시간의 흐름'속에 있어 더욱 그 시간을 '관리'하고픈 욕구가, 욕망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시간의 '흐름'없이 무언가를 이루고 싶은 인간의 자만심으로 말이다. 


오늘부터 내가 포함된 인생의 긴 '시간의 흐름' 밖에서 시간을 잘게 부수고, 나누고, 관리하려고 하지 말자. 내가 벗어날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이라면, 내가 살아가는 삶의 대전제 속에 흐르고 있는 그 시간 흐름의 속도를 체감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당신을 정지된 시간이라 착각되고 있는 시간의 '늪'으로부터 더욱 자유롭게 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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