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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 Good Oct 05. 2018

육아 골키퍼

당신이 오늘 놓친 한 골

하루가 거의 지나갈 무렵, 저녁 6시경이 되면 와이프도 한계시간을 인식한다. 앞으로 3시간, 아이들과 잘 보내고 재워보자. 그렇게 다짐을 한다. 한해 두해도 아니고 몇 년을 아이가 하나 둘 늘어남에 따라 정신없이 살다 보면, 끝도 없는 육아의 터널 속에 갇힌 느낌이 들기도 하고, 병원만 가지 않았을 뿐이지 아이 엄마는 몇 번의 고비와 우울증을 앓았을 것이다. 아내 본인도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보면, 아마도 그 시기는 우울증이 틀림없을 거라고 말하는 걸 보면 말이다. 물론 지금도 아직은 진행 중이지만 점점 나아지는 중이라 생각하는 것뿐. 아이들이 자라면서 먹고 자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면 다음은 보다 수준 높은 문제들에 부딪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일단 육체적인 '노동'아닌 노동에서 해방되는 것 자체도 삶의 질을 굉장히 변화시킨다^^.


아이들이 점점 자라면서, 둘째를 키우면서 '아~ 첫째는 이래서 힘들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불쑥 든다. 이 나이가 이렇게 어린 나이였구나 하는 생각. 어려서부터 말도 잘하고 똘똘하다 생각하니 4살, 5살임에도 너무 어른 대접받은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혼나고 으름장에 많이 힘들었을 첫째다. 그러다 셋째 아이를 키우다 보면, 도대체 아이들을 혼내야 하는 이유가 있는 건가?라는 수준(?)에 다다르게 된다. 이 수준은 내 수준이 아닌 아이 엄마의 수준을 말하는 거지만 말이다. 간접적으로 옆에서 체감하기에 그렇다.


'아이들은 혼날 이유가 없다?' 이 명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강의를 듣고, 요즘 유튜브에 강의를 전문으로 하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아이가 자라고 성인이 되는 과정에서 다양하게 맞닥뜨리는 문제들과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보이지 않는 것들이지만, 점점 아이들이 더 크면서 느끼게 되는 고충을 간접적으로 나마 듣는 것이다. 그렇게 큰 그림을 그리다 보면 지금 아이들이 이뻐 보이기만 한다는 것이다.


자존감이라는 게 무엇일까? 이쁜걸 이쁘다고 하고, 잘하는 걸 잘한다고 하는 게 아닐까? 흔히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한다. 칭찬과 꾸중이 아니라, 칭찬과 격려이다. 혼낸다는 것은 무엇을 잘못했는지의 팩트보다는 감정적인 고통을 주거나, 윽박지름은 부모 자신의 감정이 제어되지 않을 때 발생하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잘할 때는 너무 잘하다가도, 한번 꼬이면 무섭게 혼내기도 한다. 아내 말대로라면 일관성 없는 아빠일지 모르겠다. 그런데 하루를 보내고 가만히 누워 생각해 보니, 아이들을 키우는 게 축구경기의 골키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 엄마가 저녁 6시, 앞으로 3시간이라고 외치며 마음을 다 잡는 모습을 보니 더 그렇다.


얼마나 아이들에게 잘해 주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감정적인 요동 없이, 아이들을 타이르고 칭찬하고 설득하면서 하루를 보냈느냐는 것이다.


내 경험에도 아이들은 아무리 잘해주고, 뭘 사주고, 내가 할 수 있는 200%를 해주어도, 단 한 번 '욱' 하는 감정의 표출로 그야말로 공든 탑 무너지는 것이다. 잘해준 100번보다도 감정적인 요동에 팩트보다 감정이 앞서 내뱉은 주어 담기 힘든 말들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는 말이다. 화가 나서 큰 소리로 이름만 불러도, 이미 혼내는 것 이상으로 큰 임팩트를 아이들에게 주고 있다는 것이다(막내는 형이 화를 내면 형이 자기를 때렸다고 이른다. 얼마나 솔직한 감정의 표현인지..). 나는 그 감정을 주어 담았지만, 아이들이 주어 담기에는 어른들의 윽박지름은 너무 큰 감정의 무게다. 감정을 배워가는 아이들에게 무슨 느낌인지도 모르고 그저 공포만을 안겨주는 것이다.


나는 오늘 골키퍼로서 아이들과의 생활에서 내 감정, 아이들의 감정을 잘 방어했는지 모르겠다. 잘한 일에 위로하며 나를 다독이지만, 단 한 번의 호통이 마음에 쓰이는 건 아마도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아이들과의 생활에서  몸에 밴 피드백일 것이다. 알면서도 되지 않는 것이지만 말이다.


부모는 완벽하지 않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순간, 미성숙한 인간이 갑자기 성숙해지는 게 아니란 이야기다. 아이를 키우는 과정을 옆에서 보면서 정말 잘 하시는 분이라고 느끼는 분들은 아마도 아이를 낳기 이전에 그런 성품을 가진 사람일 것이다^^;(그렇게 믿고 싶다). 다양한 성품이 발현되어 아이를 키우는 육아 과정은 그 다양성과 새로움이 아이들에게는 또 다른 자극이 될 수 있지만, 그러한 성품의 문제가 아닌, 감정적인 요동, 흔히 말해 아이를 혼내는 상황은 그렇지 않다. 나도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나의 '혼냄'을 많이 합리화하기도 했지만, 저렇게 아이들이 순차적으로 자라나는 세명을 키우면서 받은 피드백은 아이들에게 감정이 앞서 호통친 일들은 사실 내가 갖고 있는 '분노'의 문제란 것이다.


아이들이 자라나며 함께 자라는 감정이 성숙해지고, 그 과정에서 부모와의 인간적인 관계가 무르익는 다면, 부족한 부모의 가르침도, 부족한 아이의 생각도 함께 모여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


모두 완벽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들 앞에서는 나도 모르게 완벽한 사람이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아이들에 대한 욕심인지, 나 스스로를 좀 더 보듬어 주지 못하는 자존감의 문제인지, 결국 함께 살아간다는 건 서로 위로하고 사랑해주면서 함께 치유된다는 게 아닐까 싶다.


세상 어느 누가, 우리 아이들만큼 나를 의지해주고, 믿어주고, 사랑해 주는가? 나만 바라보는 아이들이다. 그러기에 그 아이들의 배움은 온전히 '나'이지 나의 '말'이 아니고, 나의 '호통'이 아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흔히 말하는 '한방'은 없다. 우리는 공격수가 아니다. 그저 전후반 90분 열심히 공을 바라보고 주시하고, 공을 잡는 사람들을 살피면서 묵묵히 골 대안을 지키고 있는 골키퍼다. 백번 잘 막았어도, 한번 못 막은 골이 더 중요한걸 하루하루 인식한다면, 아이들은 그런 내 모습을 보며, 배우고 또 익힐 것이다. 그렇게 내가 나아지는 것만큼이나 더 큰 아이로 자라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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