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 Good Oct 09. 2020

하늘나라로 가는 사람들

당신은 지금 잘(?) 살아가고 있나요?

얼마 전에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아주 어릴 적 생각나는 얼굴 모습이 영정사진 앞에서 떠오르니 그냥 죄송한 마음이 북받쳐 올라온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든 다른 종교를 갖은 사람이든 결국 모든 종결점은 사후세계에 대한 정의(?)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죽음’이라는 맞닥뜨려야 하는 관문을 깊이 있게 생각하기보다는 그 순간을 제외한 죽음 이전의 삶과, 죽음 이후의 세상에 더욱 관심을 집중한다. 
  
 그만큼 사람들에게 ‘죽음’은 그다지 떠올리거나 생각하고 싶지 않은 삶의 한 순간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매번 다른 사람들의 ‘죽음’ 앞에서 슬퍼하지만, 정작 자신의 ‘죽음’의 한 순간에 대한 준비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 아니면 죽음 이후에 새롭게 이어지는 어떤 세계를 갈망하며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들. 잘 살아야겠다는 막연한 다짐이 반드시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느 인터넷에서 고 스티브 잡스가 병상에서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마지막으로 남겼던 메시지라며 적힌 글 중 다음의 글을 본 적이 있다
                                          

At this moment, lying on the sick bed and recalling my whole life, I realize all the recognition and wealth that I took so much pride in, have paled and become meaningless in the face of 
impending death.
지금 이 순간, 병석에 누워 나의 지난 삶을 회상해보면, 내가 그토록 자랑스럽게 여겼던 주위의 갈채와 막대한 부는 임박한 죽음 앞에서 그 빛을 잃었고 그 의미도 다 상실했다


죽음 앞에서 상실되는 것들. 그 상실되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며 평생을 꿈꾸며 원하는 삶의 의미 들일 수도 있다. 죽음 앞에 의미를 상실한 그런 세상의 것들. 그럼 과연 죽음 앞에서도 찬란하게 빛날 삶 속에서 만들어질 수 있는 그 무엇이 있는 것일까? 
 삶은 죽음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며, 또한 삶은 죽음 이후의 어떠한 새로운 세계를 위해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은 우리가 온전하게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연속된 일련의 과정 속에서만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그 무엇이다.

죽음을 위해 삶을 살아가는 방향이 정해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죽음’ 앞에서 무엇을 찾고 있는 것일까? 죽음은 삶의 끝자락에 서 있는 한 순간이다. 연속되지 않는 그 짧은 순간 앞에서 우리는 인간의 무기력함을 느낌과 동시에, 삶의 연속된 과정에서 얻어진 모든 것들의 의미를 상실시킨다. 그러나, 죽음 앞에 선 우리는 얻은 것보다는 잃은 것을 갈망하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이다. 
 
고 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메시지에서 결국 삶을 돌이켜 죽음 앞에서 찾은 삶의 방향을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 

What I can bring is only the memories precipitated by love.
내가 가져갈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오직 사랑으로 점철된 추억뿐이다


사실 난 죽음 앞에서 후회하지 않는 인생을 산다는 것이 반드시 그 사람의 삶의 과정을 정당화 혹은 올바른 삶이라고 단정하는 하나의 지표가 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삶은 과정의 연속이다. 어떠한 목표와 방향을 정한다고 해도 결국 매 순간의 ‘선택’이 그 방향을 이끌어 가게 된다. 그 아주 작은 ‘선택’ 말이다.  ‘사랑’을 위해 돈이 필요할 수 있고, ‘사랑’을 위해 돈을 포기할 수도 있다. 어떤 경우가 더 정당하고 더 올바른 것이라고 결과론적으로는 감히 말할 순 없다. 결국 ‘사랑’을 잃더라도 ‘사랑’을 얻기 위한 과정의 연속이었다면 말이다.  
 
다만, 크리스천으로서 나의 ‘죽음’ 앞에 떠오르는 짤막한 생각은,
삶은 내게 주어진 선물이요, 죽음은 나의 것이 아니므로, 삶의 의미는 죽음으로 평가될 수 없다는 것이다. 죽음을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는 ‘죽음’이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삶’의 주체로 그 삶을 마무리하는 이 세상에서의 작은 작별의 순간이라는 것이다. 그저 또 지나가고 있는 더 큰 삶의 과정에 연장된 또 하나의 진행형으로.                      





매거진의 이전글 괜찮아. 이대로 충분하니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