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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영 Jun 10. 2021

인도에 피어난 풀 한포기

며칠 전 외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늘 무심히 지나던 길이었는데 그날따라 인도 한 귀퉁이에 돋아난 풀 한 포기가 눈에 띄었다. 좁은 인도가 위험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것 외에는 별 다른 생각이 없었는데 어느 날 인도와 차도를 가르는 가드레일이 생겼다. 그것을 설치하다가 뚫린 작은 구멍에 연약한 풀 한 포기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던 것이다. 마음이 찡했다.


넓은 화단이 아닌 그 작은 못 구멍에서도 살겠다고 뿌리를 내리고 고개를 치켜들었을 그 이름 모를 풀의 의지가 대견하게 느껴졌다. 풀은 환경을 탓하지 않았다. 왜 내가 여기에 있는지, 왜 꽃나무가 가득한 화단이나 산등성이가 아닌 도심의 인도에 그것도 작은 못 구멍 안에 떨어졌는지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다. 그 풀 한 포기가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환경을 받아들이고 이겨내는 것뿐이었다. 살아가는 것뿐이었다. 좁은 구멍에 뿌리를 깊게 내리고 단단히 자리를 잡는 것뿐이었다. 


어쩌면 화단에 뿌리를 내리지 않았기에 살아갈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화단에 뿌리를 내렸다면 다른 화초들의 양분을 빼앗는다며 솎아져 뽑혔을지도 모른다. 물론 산이나 들에 뿌리를 내리고 별일 없이 오래도록 살아갈 수도 있었다. 그래도 풀은 받아들였다. 산이나 들에서 살아가는 것을 바라지 않았고, 화단에서 뽑히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곳에서의 삶에 만족하며 살아간다.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의 환경을 받아들이고 이겨냈는가? 잘 살아가고 있는가? 단단한 마음을 갖고 있는가? 아쉽게도 모두 아니었다. 왜 나는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탓하고, 숨 쉬고 있기에 살아갔다. 어쩔 수 없는 상황들이라 여기며 내 마음을 내려놓고 살았다. 부모를 원망했고, 자식을 원망했고, 자신을 원망하며 살았다. 그런 것들이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바꾸지 못했다. 


그럼에도 살아가야지. 이미 주어진 환경을 원망하기보다 받아들이며 마음 단단히 먹고 살아가야지. 그것이 작은 풀 한 포기가 나에게 알려준 것이다. 쉽지는 않을 것이다. 40년을 그리 살아왔으니 손바닥 뒤집듯이 바로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작은 풀 한 포기를 떠올려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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