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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영 Apr 07. 2021

일회용 밴드를 붙인 곳은 아이의 손가락이 아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언제부터 손과 발에 일어난 작은 거스러미를 그냥 두지 못하고 뜯어냈는지는 기억할 수 없다. 하지만 39살이 된 지금도 나는 그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있다. 불안하거나 걱정될 때 없는 거스러미도 만들어서 뜯어내고, 습관적으로 뜯어내기도 한다. 그래서 늘 사람들 앞에 손을 내보이는 일을 피해왔다.      


손이 크고 못생겨서 콤플렉스라는 말을 방패 삼아 손을 내놓기를 꺼려했다. 여름에는 누가 내 발을 볼까, 상처투성이인 발을 보며 손가락질하지 않을까 마음 졸이면서도 주기적으로 패디큐어를 해왔다. 발톱에 색을 칠해 놓으면 시선이 그쪽으로 분산되어 내 발의 상처는 신경 쓰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도 그 습관만큼은 버리지 못했다. 그래도 지금은 많이 양호해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양 손의 엄지손가락은 균형이 맞지 않고 엄지발톱은 무좀이 생긴 아빠 발처럼 발톱이 깨져있다. 네일숍 직원 말로는 새로 나오는 발톱을 건드려서 상처가 생기는 것이라고 했다. 목욕탕에 가서 세신이라도 하려고 하면 아주머니는 발을 왜 이렇게 건드려놓았느냐고 한마디 하신다.      


언젠가 출근하려고 마을버스를 탔는데 나와 비슷한 여자를 보았다. 그녀는 앉아 있었고 나는 그녀 앞에 선 채로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데 문득 그녀의 손으로 시선이 옮겨졌다. 무심한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손은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이내 붉은색이 보였다. 그래도 아픔을 느끼기 전까지는 피가 비치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나도 늘 아픔을 느끼고서야 내가 거스러미를 뜯어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아이가 손톱을 물어뜯는 작은 행동이 자꾸 눈에 거슬리고 걱정되었다. 나처럼 될까 봐. 습관이 되어 나도 모르게 물어뜯고, 불안한 마음을 손톱으로 위안받을까 봐 겁이 나고 무서웠다. 아이가 처음 손톱을 물어뜯기 시작한 것은 일곱 살 정도 되었을 때였다. 아이가 두 돌 될 무렵부터 조금씩 일을 시작했고, 다섯 살이 되었을 때에는 정규직으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아이가 어린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다. 옆에 있어줘야 할 엄마가 하루 종일 밖에서 일하느라 돌보지 못하니 정서적으로 불안한 것 같았다. 그 버릇을 고쳐주기 위해 매니큐어도 발라주고 스티커도 붙여주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손에 있는 세균이 입속으로 들어가 배가 아프게 된다고 계속 설명해준 덕분인지 점차 횟수가 줄어들다가 고쳐진 것처럼 보였다. 이제 괜찮은 줄 알았다.    

  

코로나 19로 모든 사람들이 지쳐가기 시작할 때쯤 아이도 다시 손톱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일하는 엄마를 둔 탓에 가정학습 대신 긴급 돌봄 교실을 다니는 아이는 많이 힘들었던 모양이다. 퇴근 후 씻고 나오니 아이가 할 말이 있다며 조용히 손을 내밀었다. 손톱을 깎아 준지 며칠 되지 않아 짧은 손톱이 날카롭게 울퉁불퉁해져 있었다. 활동적인 아이의 활동범위를 제한한다는 것이 아이에게 얼마나 참기 어려운 일인지 알고 있었기에 아이를 나무랄 수 없었다. 대신 손톱 깎기로 날카로운 부분을 다듬어 주고 나의 솔직한 마음을 말로 표현해주었다.


“네가 속상하고 화나는 일이 있어서 그렇게 행동하는 것 같아 엄마가 걱정돼. 그리고 그 마음을 몰라주어서 너에게 미안하고 슬픈 기분이야. 손톱도 네 몸의 일부야. 소중하게 생각해줄래? 뜯어놓으면 아프잖아.”


아이는 손가락 하나를 가슴에 꼭 안고 한참이나 풀이 죽어 있었다. 아이를 안고 미안하다고 하니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엄마 때문이 아니라 내가 나한테 미안해서 그래. 몰라서 그랬어. 그러니까 괜찮은 거지?”


어느새 마음까지 훌쩍 커버린 아이에게 말해주었다. 

“그럼~ 엄마가 이런 걱정을 한다고 진작 말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그때는 네가 어리다고만 생각했어.” 


아이는 자신도 모르게 입에 손을 넣을 것 같다며 일회용 밴드를 붙여달라고 했다. 그날 일회용 밴드를 붙인 곳은 아이의 손이 아니라 내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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