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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영 Mar 27. 2021

육아는 아무리 늦어도 빠르다

“친구 소개로 왔어요. 약 먹고 우울증이 나았다고 해서요.”

“우울증을 고치는 한약은 없습니다.”

“우울증이라고 하던데요?”

“한약으로 우울증을 낫게 한 것이 아니고 체력을 키워준 것뿐입니다.”     


오랜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만났으니 30년 지기 친구다. 친구의 어머니는 오랫동안 파킨슨병을 앓고 계셨는데 밤새 유명을 달리하셨다는 연락이었다. 그 날 출장을 마치고 바로 장례식장으로 달려갔다. 가족들은 오래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해왔는지 담담한 모습이었다.      


서로 아이를 키우느라 자주 연락을 못하고 지낸 터라 만나자마자 할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동안 지냈던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 지인들의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친구가 이야기를 꺼냈다.      


“나 우울증이었던 거 기억하지? 그때 집이 3층이어서 다행이었지. 안 그랬으면 무슨 일을 저질렀을지도 몰라.”

“응, 나도 그렇잖아. 요즘은 어때?”

“한약 먹고 싹 나았어.”

“정말? 거기가 어디야?”     


둘째를 낳고 산후우울증을 심하게 앓던 친구는 한약을 먹고 다 나았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게다가 사는 것이 너무 행복하고 아이들도 너무 예뻐 보인다는 것이다. 삶이 행복한 건 둘째치고 아이들이 예뻐 보인다는 말에 그 한의원이 어딘지 궁금했다. 매일 말대꾸를 하고 짜증을 내는 아이 돌보는 것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소개받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바로 내원 예약을 했고 다음날 방문하기로 했다.  

   

그런데 선생님은 한약으로는 우울증을 고칠 수 없다고 하셨다. 친구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온 나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였다. 선생님은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셨다.      


“사람이 피곤하고 힘들 때 누가 슬쩍 건드리면 화가 나고 짜증이 납니다. 그런데 내 몸이 건강하고 체력이 좋으면 누가 슬쩍 건드려도 전혀 화가 나지 않아요. 그래서 우울증이 있는 분들에게는 보약을 처방합니다.”   

  

나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하는 일마다 잘 되고 기분이 좋을 때는 아이가 짜증을 내도 그냥 넘어갈 수 있었지만, 피곤하고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작은 짜증에도 화가 났던 것이다. 그냥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하기로 했다. 보약은 내 예상보다 비쌌다. 한약이 저렴했다는 친구의 말이 생각났지만 꼭 좋아지고 싶었다. 그래서 보약을 지어왔다.      


약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새 식구인 강아지 덕분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약을 먹었으니 좋아질 거라는 나의 믿음 때문이었을까. 아이의 작은 짜증은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온 방바닥을 등으로 닦으며 굴러다녀도 조용히 지켜볼 수 있는 끈기가 생겼다. 아직 한 달을 채 먹지 못했지만 조금씩 더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생겼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는 매일 마시던 술도 끊을 수 있었다. 이런 것들이 모두 모여 아이를 조금씩 변화시키고 있었다.      


짜증을 냈더라도 “예쁜 말로 다시 말해줄래?”라고 말하면 “엄마~ 여기까지만 읽고 치울게요.”, “게임 3분만 더 하면 안 돼요?”라고 다시 말해준다. 내가 변해야 아이가 변한다. 그것을 알면서도 나는 변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아이가 변하는 것을 보고서야 믿는 부족한 엄마지만 ‘시작은 아무리 늦어도 빠르다’는 이민규 작가님의 이야기를 마음에 새기고 앞으로 더 열심히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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