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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영 Oct 02. 2022

사랑받기에 충분하다

노력하지 않아도 돼

길에서 지내는 아기 고양이가 따라 들어와 함께 지낸 적이 있다. 이름을 부르면 ‘애오’하고 대답하던 무척이나 사랑스럽던 가을이. 사랑스럽다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아이였다. 사랑해 마지못했지만 알레르기가 심해 함께 지낼 수 없었다. 결국 더 사랑을 많이 받을 가정으로 입양을 보냈지만 3년이 지난 지금도 마음에서는 보내지 못한 채 아직 함께 있다.     



2021년이 시작할 무렵 강아지를 키우기 시작했다. 아들을 키우고 있지만 아들의 사랑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끼던 시기였다. 부모님의 사랑도 받아보지 못했고, 아들이 혼자라 외롭고, 동물을 키우자고 조른다는 핑계로 입양하게 되었다. 마음은 고양이를 키우고 싶었지만 다시 실패하고 싶지 않았다.      


강아지를 키우기로 한 데에는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친구 어머니가 어머니, 즉 친구의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힘들어하실 때 강아지를 키우시며 힘든 시기를 이겨내셨다고 들었다. 우울해할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쁘셨다고. ‘데일 카네기의 자기 관리론’이라는 책에서도 마음속에서 걱정을 몰아내는 법으로 걱정할 틈이 없이 바쁘게 지내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당시 집안일과 육아로 바쁘게 제법 바쁘게 지내고 있었지만 우울증을 떨치지 못하고 있어 더 바쁘게 지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낀 것이다.

     

고양이와 달리 진짜 손이 많이 갔다. 스스로 배변처리를 하지 않아 치워주지 않으면 냄새가 진동을 했다. 자주 목욕시켜주지 않으면 몸에서 냄새가 났고, 빗질이 소홀하면 금세 털이 엉켰다. 쉬고 싶을 때, 혼자 있고 싶을 때에도 혼자 두지 않았다.      


사실 나는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하고 사람과의 관계를 찾아 나서는 사람이지만 혼자 있는 시간도 중요하게 생각하기에 이런 생활이 크게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러다 문득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강아지의 삶이 나와 닮은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이 아이는 인간으로부터 끊임없이 사랑을 받고자 노력한다. 집안 곳곳을 따라다니며 눈을 마주치길 원하고 그러다 한 번이라도 눈 맞춤이 이루어지면 그저 행복해하며 꼬리를 흔든다. 자기만을 바라봐주길 바라고, 관심을 받지 못하면 슬퍼한다. 내가 화가 난 것 같으면 내 눈치를 보고, 구석에서 조용히 분위기가 좋아지기를 기다린다. 잠깐 만져주다 그만두면 앞발로 더 만져달라며 조른다.     


언젠가부터 한 번씩 이 아이에게 화가 났다. 눈치 보는 것이 싫었고, 나를 혼자 두지 않는 것이 싫었다. 처음에는 그냥 내가 좀 피곤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요즘 좀 지치는 일이 있어서 그런 것이라고 판단했다. 답답한 마음에 다가오는 아이를 조용히 밀어내는 날들이 늘어났다. 미안했고, 그런 내 모습에 또 화가 났다.     


오늘 아침 일찍 잠에서 깨 침대에 가만 누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이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동안 내 마음속에서 일어났던 화의 원인이 나를 닮은 모습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랑을 받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마치 내 모습과 같았던 것이다. 이 아이는 노력하지 않아도 충분히 사랑스럽고, 사랑받아 마땅한 존재인데 왜 애쓰고 노력하는 것인지.     

 

그렇다면 나도 그럴까? 나도 사랑받기에 충분한 사람이며, 사랑받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아무도 나에게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없다. 그렇기에 누군가에게 해주기만 했던 말이다. 설령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도 하더라도 오늘은 나에게 해주고 싶다. 그러면 그냥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세영아, 아들아, 보리야,

너는 지금의 모습 그대로도 사랑받기에 충분한 사람이야.

그러니까 사랑받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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