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의 우리
작은 아이 하나로 인해 희망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고작 3kg의 무게로 세상에 태어나 자라고 있는 아이가 우리 가정에 주는 의미는 우주를 다 가진 것만큼 특별하고 컸습니다. 가장 큰 행복을 느끼던 친정엄마의 일기에도 그 희망이 묻어나 가슴이 저려오기도 합니다.
엄마의 버겁고 힘겨운 시간이 작은 아이로 인해 잊혀지고, 극복이 되는 순간순간을 느끼며 엄마는 힘을 내고 웃고 자신에게 주어진 보호자의 역할이 얼마나 소중한지 감사하며 사셨습니다.
아직 여리고 작은 아이를 쉽사리 밖으로 데리고 나가기가 조심스러워 참고 참다가 처음으로 아이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습니다. 고작 집 앞 홈플러스를 가는데도 찬바람에 감기라도 걸릴까 옷을 입히고, 바로 코로 바깥공기가 들어가지 않도록 스카프로 덮어주고, 외할머니는 단단히 포대기로 업고, 아빠는 사진기를 들고, 엄마는 기저귀 가방을 들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는 뒤를 졸졸 따라갔습니다.
외할머니 등에 업혀 같은 보폭의 진동을 느끼며 밖으로 나온 아이는 지나가는 차 소리, 사람 소리에 신기한 듯 조용하더니 이내 저도 보고 싶다고 낑낑대기 시작했습니다.
살짝 스카프를 걷어주자 바깥세상을 바라보는 아이의 표정은 참으로 귀여웠습니다.
짧은 목을 빼고 고개를 들어 아이의 시선 안으로 들어온 세상의 풍경은 어땠을지 궁금합니다.
처음 교회에 가던 날!
처음이었던 건 바깥 산책만이 아니었습니다.
생후 50일이 넘어선 아이를 데리고 처음으로 교회에 갔습니다.
언제 교회에 나오나 기다리셨던 할머니, 할아버지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아이의 첫 발걸음을 축하해 주셨습니다. 많은 성도분들 앞에서 목사님께 안수를 받고 인사하던 날이기에 아이에게 넥타이가 달린 올인원 슈트를 입혀 한껏 멋을 냈습니다. 덕분에 목사님께 칭찬도 받았습니다.
처음 뵙는 목사님 품에 안겨서도, 많은 성도분들이 눈앞에 보일 때도 울지 않고 잘 있어준 아이.
엄마는 아이와 함께 신앙을 이어가는 이 순간 감사와 축복으로 마음이 들떴습니다.
오래전부터 기도하며 바랐던 아이이기에 더욱 감사하고, 아이를 만나고 만져보고 키우고 부대끼며 살 수 있는 날들이 있었기에 감사하셨습니다.
11월의 우리
우리에게 주어진 이 시간이 참으로 소중했기에 당연하게 여길 모든 순간이 엄마에게는 기쁨이었습니다.
엄마의 눈에 저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예쁜 딸이었습니다.
자라나면서 저는 엄마로 인해 제가 예쁘고 똑똑하고 무엇이든 다 잘하는 사람으로 알고 자랐습니다.
모든 삶이 나로 인해 굴러가는 것처럼 느껴질 만큼 엄마의 삶에는 제가 가득했던 것 같습니다.
다 커보니 그게 다가 아니었지만 엄마로 인해 높아진 자존감만큼은 감사할 일이지요.
그런 엄마의 눈에 어느덧 초보 엄마가 된 딸은 여전히 예쁘고 착하고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비치셨나 봅니다.
11월 4일에 엄마가 써놓으신 일기는 스스로를 어설프고 서툴다 생각했던 것과 달리 최선을 다하는 사랑스러운 엄마로 보시던 친정엄마의 시선이 담겨있습니다.
이 아이가 참으로 소중했기에
친정엄마와 함께 아이를 키우는 순간이 감사했기에
저에게는 알 수 없는 힘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엄마가 저에게 주셨던 것처럼 아이가 세상의 중심이 되어 줄 수 있는 모든 사랑을 주고 싶었던 그 마음 하나였습니다. 엄마에게 배운 사랑처럼.
엄마는 종종 저를 키우실 때 이야기를 해주시곤 했습니다.
딱 저처럼 처음 아이를 낳고 물고 빨며 애지중지 키우던 친정엄마를 보며 외할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애기가 그렇게 예쁘니?"
"그럼! 엄마~ 얼마나 예쁜지 몰라~ 어떻게 안 예쁘겠어!"
"그래~ 예쁘지! 누구 딸인데!"
외할머니는 일기 속 친정엄마의 시선처럼 최선을 다해 아이를 키우는 모습이 대견하고 사랑스러워서 물어보신 것 같습니다. 엄마는 삼십여 년이 지나 이 일기를 쓰시면서 그때의 외할머니의 마음을 느끼셨을까요?
친정엄마에게 배울 것이 너무 많은 초보 엄마
"애가 애를 키우네..."
아기띠는 아직 아기가 작아서 어렵고, 매일 안고 있자니 손목과 팔은 아프고......
친정엄마가 추천해주신 포대기를 사서 어떻게든 팔에서 아이를 놓고 싶었던 저의 포대기 실력을 보고 엄마가 하신 말씀입니다.
이토록 헐겁고 안정감 없는 포대기는 보신 적이 없으실 테지요.
외할머니 등에서는 어찌나 단단하고 안정감 있게 포대기가 잘 둘러지는지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습니다.
아이의 표정에서도 편안함이 느껴지더군요. (흥! 칫! 뿡!)
"엄마는 어릴 때 이거보다 더 얇은 포대기 하고도 막내 삼촌 업고 고무줄도 했어"
"푸하하하!"
엄마가 안 계실 때도 집에서 종종 포대기로 아이를 업고 저녁 준비를 해보았지만 몇 분 안에 등에 있어야 할 아이가 허리춤으로 내려오면서 결국 저는 끝내 포대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역시 엄마의 내공은 따라갈 수가 없더군요.
하지만 엄마가 포대기를 매주실 때는 아주 단단하게 잘 고정되어서 밥도 먹고 빨래도 널고 할 수 있었어요.
커서도 엄마의 손이 많이 필요한 딸.
그것이 사는 재미였던 엄마.
엄마 말대로 우리는 환상의 콤비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