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소유의 삶을 살지 못한다] 내가 택한 삶은 소유의 삶이었으나 명심하라, 사업과 투자의 종잣돈을 마련하기 위하여 불필요한 소비는 최대한 억제하였다. 즉 소유를 지향하면서도 절약을 미덕으로 삼고 '행복하게 돈을 모으며' 살았다. 그리고 그렇게 하여 모은 돈들은 점점 더 불어나더니 나를 부자로 더욱더 만들어 주었고 그때부터 비로소 소비를 하기 시작했다. 기억해라. 소유를 더 하려면 무소유에 가까운 절약부터 하여야 한다는 진리를 말이다.(299쪽)
[접대를 받지 말라] 하지만 기본적으로 나는 상대방이 내 애인이 아닌 이상,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취미가 무엇인지 등을 미리 알아내서 상대로부터 호감을 받아 내는 것을 아더메치한(아니꼽고, 더럽고, 메스껍고, 유치한) 행위라고 단정 짓는 '고지식한(?) 사람이다. .....순전히 이해관계로만 만난 사람들 앞에서 친한 척하면서 나는 좋아하지도 않는 동백아가씨 노래에 손뼉을 치고, 신날 것도 없는데 춤도 같이 추어야 하는 것이 나는 싫다. 그런 사람들과 술잔을 머리 위에 터는 짓도 싫고 부어라 마셔라 하는 것도 싫다..... 정말 단 한 번도, 그런 접대를 한 적이 없다.(589쪽)
[나의 어린 시절과 아버지] 아버지가 내게 심어 주려고 한 것이 어떤 일 전체의 뼈대를 보는 능력이었고 일을 하는 데 있어서의 세부적인 것을 놓치지 않는 방법론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은 내가 이 세상을 홀로 살아가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608쪽)
제사상에 음식을 올려놓는 원칙조차 "편한 대로 하면 되지 무슨 격식이냐"고 하였던 분이다. 격식을 싫어하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나는 사업을 하면서 단 한 번도, 정말 단 한 번도 시무식이니 종무식이니 개업식이니 하는 것을 해 본 적이 없으며 제사도 지내지 않는다.(612쪽)
[망년회를 하지 마라] 회사 공금으로 푸짐하게 먹고 노래 부르고 술독에 빠졌다 나오면 정말 뭐가 달라질까? 생산성이 오를까? 문제는 해결될까? 부가가치가 생길까? 망년회를 통해 지나간 한 해를 반성하고 새해의 각오를 다진다고? 차라리 다 같이 눈을 감고 묵상하는 시간을 가져라(628쪽)
당신이 사업을 한다면 직원들하고 으쌰으쌰 하지 말고 망년회 비용을 현금으로 직원들에게 나누어 주어라. 그리고 케이크 하나씩 돌려 직원들이 가족과 함께 있도록 하고 곰곰이 혼자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주어라.(629쪽)
세이노(SAY NO)의 가르침.
몇 주 째 베스터셀러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길래 궁금했다. 코로나 몇 년간 '부', '돈', '투자' 등의 키워드가 인터넷서점의 베스터셀러 상위권을 점령하고 있었기에, 그런 것에 대한 거부감도 없지 않아서, 살짝 미리 보기로 인상을 훑어본 후, 문체가 예사롭지 않아 흥미로운 마음을 간직한 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거기다 가격이 너무 저렴하여 궁금증은 증폭되었다. 학교도서관에서 신간 구입을 위해 도서 신청을 받는다고 하길래 '세이노의 가르침'을 신청했다. 그리고 며칠 전에 도착했다. 빌려 보다가 밑줄이 치고 싶어서, 가격도 저렴해서 구입했다.
'피보다 진하게 살면 되지!' 이 한마디 문장에서 느낄 수 있듯이 강렬하다. '너무 팍팍하지 않느냐' 고 불평할 수도, '이렇게까지 살 필요가 있을까 ' 싶을지라도 세이노의 가르침은 본질을 관통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속이 시원하다. 돌려말하지 않고 치장하지도 않고 추상적이지도 않고 원칙적이며 더구나 실천적 삶 자체이다.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위선이 당연한 세상에 '당당하게 자신의 원칙을 고수하며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피보다 진하게 산 삶'의 경험을 또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대가없이 가르쳐주는 사람은 또......
'피보다 진하게 살' 자신이 없어도, 매우 귀기울여 새겨들어야 할 내용들이 많다.
<사족>
상위 조직으로 갈수록 위선의 양과 크기가 비례해서 커짐을 나는 그나마 깨끗하게 보이는 교육계에서도 보았다. 나와 함께 근무했던 미국 국적의 원어민은 내가 숨김없이, 누설될 염려없이, 조직과 사람에 대한 불평 불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내가 투덜투덜거리면 그는 'That's the life!' 라며 스트레스 받지 마라고 위로했다. 그게 삶이라고, 세상은 그런 거라고 원래, 당신이 순진해서 모르나본데, 자신은 출생이 차별이었던 어린시절과 학창시절(그는 재미교포 2세였다. 부모님이 미국으로 이민을 갔고, 그는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랐다.)을 보내면서 사람을 먼저 절대 믿지 않는다고, 그의 말을 현실 LIFE로 체념하는데는, 아직도 서툴지만 겉으로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할 수 있게 되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마도 그 조직을 나올 때쯤이었지 싶다. (나는 국민의 세금을 펑펑(?) 쓰는 것이 정말 보기 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