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아 장편소설
어떤 딸인지, 어떤 딸이어야 하는지, 생각해보지 않았다. 누구의 딸인지가 중요했을 뿐이다. 빨치산의 딸이라는 수렁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발버둥 치는 데 나는 평생을 바쳤다. 아직도 허우적거리는 중이다. 빨치산의 딸이라는 말에는 '빨치산'이 부모라는 전제가 존재한다. 그 부모에게도 마땅히, 자식이 부모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듯 자식에 대한 기대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해보지도 못했을 만큼 빨치산의 딸이라는 굴레가 무거웠다고, 나는 변명이라도 하고 싶었다.(225쪽)
사무치게,라는 표현은 내게는 과하다. 감옥에 갇힌 아버지야말로 긴긴밤마다 그런 시간들이 사무치게 그리웠으리라. 그 당연한 사실을 나는,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야 겨우 깨닫는 못난 딸인 것이다. 아빠, 나는 들을 리 없는, 유물론자답게 마음 한 줌 남기지 않고 사라져, 그저 빛의 장난에 불과한 영정을 향해 소리 내 불렀다. 당연히 대답도 어떤 파장 따위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도 하지. 영정 속 아버지가, 이틀 내 봤던, 아까도 봤던 영정 속 아버지가 전과 달리 그립던 어떤 날들처럼 친밀하게 느껴졌다. 죽음으로 비로소 아버지는 빨치산이 아니라 나의 아버지로, 친밀했던 어린 날의 아버지로 부활한 듯했다. 죽음은 그러니까, 끝은 아니구나, 나는 생각했다.(231쪽)
아버지는 혁명가였고 빨치산의 동지였지만 그전에 자식이고 형제였으며, 남자이고 연인이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남편이고 나의 아버지였으며, 친구이고 이웃이었다.(249쪽)
아버지는 백운산에 가장 오래 있긴 했지만 이산 저산 떠돌며 48년 겨울부터 52년 봄까지 빨치산으로 살았다. 아버지의 평생을 지배했지만 아버지가 빨치산이었던 건 고작 사년뿐이었다. 고작 사년이 아버지의 평생을 옥죈 건 아버지의 신념이 대단해서라기보다 남한이 사회주의를 금기하고 한번 사회주의자였던 사람은 다시는 세상으로 복귀할 수 없도록 막았기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의 시간을 흐르지 않는다. 그래서 아버지는 고작 사년의 세월에 박제된 채 살아왔던 것이다. (252쪽)
역사와 시대를 인간은 벗어날 수 없다.
사람은 그가 속한 역사와 시대의 질곡을 안고 살아간다.
시대에 갇힌 사람, 굴레를 씌우는 사람, 시대와 굴레에 갇혀 희생된 많은 사람들......
소설을 읽으며, 우리의 근현대사가, 많은 희생자들이 저절로 생각이 났다.
빨치산 아버지의 죽음과 장례식장을 찾은 사람들을 통해 40년대 해방공간의 혼란과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가 '슬프게', '아프게', '안타깝게', '억울하게' , '때로는 웃기게' , '아련하게', 때로는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지게,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시대와 이념을 너머 '사람이', '우리의 어머니와 아버지와 이웃'의 삶이, 생생한 삶이 그곳에 있다. 무슨 빨치산이고 어쩌고, 빨갱이고 어쩌고, 사회주의자 어쩌고 저쩌고 이런 거 없다. 한 가지 명제로 한 시대를, 한 사람을 규정할 수 없는 이유이다. 빨치산이었던 아버지는 '동네 심부름꾼'을 자처했고, 누구보다 이웃의 일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는, 사람에 대한 정이 많은, 시선이 사람을 향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 시대에 옳다고 생각한 것을 신념으로 선택하였고, 자신이 생각하는 그 신념에 따라 이웃사랑을 실천하며 사는 '한 사람의 시민'이었다.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기준은 "시선이 타인을 향하는가? 나를 향하는가?"라고 했던 누군가의 말이 기억난다. 역사는 '시선이 타인을 향했던 사람들'의 노력으로 발전하고 진보하였다고 나는 믿는다.
며칠전 일타강사에서 경제학자 장하준 교수의 강의를 들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런 말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 시대에 가장 바쁜 사람은 '시민'이다. 시민은 생업에도 종사해야 하지만, 국가의 정치, 경제, 외교, 안보 등 모든 것에 관심을 갖고 생각하고 의견을 내어야 한다. 국가를 만드는 것은 시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