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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나무 Jun 13. 2023

그 시간과 공간으로 빠져드는 그림

<모네>의 풍경화, 그림도 자기 안에 있는 것이 보인다

봄이 가고 여름입니다. 녹음이 짙어지고 공기도 더워지는데 아직 연둣빛 상큼하고 설레던 봄을 보내기가 아쉽습니다. 모네도 이런 마음이었을까요. 나무도, 풀밭도, 뒤집힌 양산마저도, 하늘마저도 연둣빛으로 물든 봄을 보며, 미리 아쉬웠던 걸까요. 그림의 제목이 <그리고 여름>입니다. 여름 앞에 '그리고'가 붙은 이유를 생각하게 됩니다.  모네의 그림은 많은 사람들이 사랑합니다. 나의 짧은 생각으로는 이전의 고전주의나 낭만주의 그림과 달리  사물이나 인물, 풍경 등의  '분위기', '느낌'을 잘 포착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있는 그대로 사실적인 그림을 보면서는 '실제보다 더 사실적인 것 같아. 대단한 예술가야.' 이런 말들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모네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화가의 눈에 비친 피사체에 투영된 화가의 마음을 상상하게 됩니다.


한낮. 햇살이 밝게 부서지는 날.  나른하고 평화로운 산책.  봄바람이 기분 좋게 산들거리고.  


바라보는 사람이 그림이 전하는 분위기나 감정과 일치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복잡한 마음도 잊고 멍하니 바라보다 그 풍경 속으로 빠져들고 얼마간 그림 안으로 소풍 가게 되는 느낌입니다. 그리고 상상합니다. 모네처럼 '봄이 지나갈 것임을 알기에 이 순간이 더 소중함'을 느낍니다. 아름다움이 지나가기 전에 화폭에 붙잡은 화가가 고맙기까지 하지요.


모네, <그리고 여름> 출처 다음


'사람은 자기 안에 있는 것만 보인다'라고 합니다. '그림도 자기 안에 있는 것이 보인다'라고 합니다. 정말 그런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수많은 그림 중에 유독 나의 시선을 붙잡고 오랫동안 바라보게 하는 그림이 있습니다. 넋 놓고 바라보노라면 지금 내가 서있는 시간과 공간을 잊게 하는 그림 말입니다. 왜 이토록 이런 그림들이 좋을까 생각해 보면 유난히 자연을 좋아하는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맑은 날. 하얀 구름이 하늘에 떠있고, 바다가 바람에 찰랑이고, 갖가지 풀들이 바람 따라 눕는, 여인의 치맛자락을 건드리는 기분 좋은 바람의 움직임을 바라봅니다. 시각은 어느새  다른 감각으로 연결됩니다. 풀냄새, 바다냄새를 기억합니다. 살갗에 닿았던 싱그러운 바람을 소환합니다. 그림을 보는 동안 제주의 <우도>가 생각났습니다. 지난 6월, 양산을 들고 우도에 갔습니다. 유월의 햇살에 바다는 더없이 푸르렀습니다. 바람에 눕는 들풀의 모습이 인상적이고 예뻐서 사진을 찍고 글도 썼던 기억이 났습니다. 그림을 본다는 것은 '내 안에 있는 기억'을 더듬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모네, <푸르빌 절벽 산책로>, 다음


모네는 프랑스의 인상주의 대표화가로 유명합니다. 모네가 사랑한 지베르니에 있는 정원을 그린 그림들은 여러 나라의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을 만큼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빛에 따라 달라지는 사물을 관찰하고 '찰나의 인상'을 화폭에 담아내는 것을 평생 탐구하고 천착했습니다. 빛에 과도하게 노출되어 노년에는 백내장으로 시력을 잃을 지경에 이르렀고 말년의 그림은 형체를 분간할 수 없는 모습으로 변모하였습니다. 이 무렵의 그림을 보면 뭔가 혼란이 느껴지고 화가가 사랑한 빛만, 사물과 형체, 피사체는 사라지고, 오직 빛만 남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림은 나에게 위안입니다. 가까이 있어도 그리운 자연에 대한 사랑을 기억하는 방법입니다. 모네가 자연 안에 사람은 살짝 넣어서 그 사람들 자리에 '나 자신'을 놓아보게 해 주어서 고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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