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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나무 Jul 06. 2023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그림

라파엘로 산치오, <아테네 학당 >

라파엘로 산치오(1483~1520), 아테네 학당


라파엘로 산치오(1483~1520)의 <아테네 학당>입니다. 서구 문명의 발생지이며 고대 문명의 지적, 예술적 사상이 비롯된 그리스 아테네의 학당은 이런 모습이었을까요? 지적 호기심이 발동하는 그림입니다. 그림인데 마치 사진을 보는 듯 사실적이라 그리스의 아테네 학당은 이런 모습이었을 것 같다고 착각하게 됩니다.


그림을 보노라면 먼저 그리스 로마의 신전 같은 웅장하고 아름다운 <아테네 학당>의 모습에 끌립니다. 그리고 화폭을  메운 많은 등장인물들에 시선이 흐르고 그들의 정체가 궁금해집니다. 사람들은  두셋이서, 혹은 여럿이 모여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혼자 골똘히 탐구하기도 하고 생각에 빠져있기도 합니다. 고대 <아테네 학당>에서 철학자, 예술가, 수학자, 정치가 등은 삼삼오오 모여 토론하고 논쟁하며 세계를 이해하고자 했겠지요.


<아테네 학당>의 배경은  성 베드로 대성당(로마 바티칸시티)이 모델이라고 합니다. 라파엘로는 고대 대학자들의 학문의 전당으로 적합한 배경을 고민했을테고,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아하, 바로 이곳이야' 했겠지요. 실제로 성 베드로 성당과 <아테네 학당>의 배경은 상당히 겹쳐진다고 합니다.(언젠가 실물을 보며 비교할 날이 있겠지요.) 그리고  <아테네 학당>에는 르네상스 시대  생각의 뿌리가 되는 고대 철학자들 즉,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 헤라클레이토스가 등장합니다. 라파엘로는 같은 시대를 살지 않은 철학자들을 <아테네 학당>에 동시에 그려 공존하게 하였습니다.


라파엘로 산치오는 이 그림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요?


플라톤(그리스, BC427~BC347)과 아리스토텔레스(그리스, BC384~BC322)는 스승과 제자 간입니다. 형이상학과 형이하학, 철학의 큰 두 줄기를 대표하는 사람입니다. 두 사람을 아테네 학당 정중앙에 배치하였습니다. 플라톤은 하늘을 향해 손가락을 뻗으며 그의 이데아론을 주장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의 옆에 바닥을 향해 손바닥을 펼쳐 보이며 현상세계의 원리를 설명하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너머 학문에 대한 진지한 논쟁을 벌이는 모습입니다. 스승의 이론은 제자에 이르러 반론이 제기됩니다. 제자는 스승을 토대로 세계를 더욱 풍부하게 설명할 새로운 원리를 정립합니다.  그렇게 학문은 깊어지고 정교해지며 발전합니다. 스승에 의문을 가질 수 있어야지요. 의문은 질문을 만들고 질문은 논쟁을 낳으며 논쟁은 논리를 풍부하게 하여 세계를 해석하는 힘을 얻습니다. 스승과 제자 간에 동등하게 이루어지는 논쟁 모습이 좋습니다. 학문의 전당은 이랬으면 좋겠다고 라파엘로는 말하고 싶었을까요.


그림은 화가의 손을 떠난 순간 보는 사람의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화가의 시대를 통해 나의 시대를 오버랩하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그림을 보는 이의 시대로 가져와 재해석하며 감상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림의 생명은 바로 이 지점에 있으니까요.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와 마찬가지입니다.


플라톤  왼쪽으로 일곱 번째쯤 위치에 옆모습으로 서서 누군가를 향해 열심히 말하고 있는 인물이 소크라테스입니다. '너 자신을 알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지요. 약 2500년 전에 이런 섬뜩한 지혜의 말을 했다니요. 그리고 소크라테스를 향해 몸을 기울이고, 갑옷 입고 칼차고 있는 사람은  헬레니즘 세계의 토대를 쌓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입니다. 한 번 입을 열었다 하면 7시간 이상을 떠들었다는 이 못말리는 철학자의 말에 귀 기울이는 왕의 모습입니다. 왕이 철학자에게 귀를 열어야 하는 이유를 생각하게 합니다.


계단에 하늘색 옷을 반쯤 걸치고 있는 사람은 견유학파 디오게네스(그리스, BC400~BC323(추정))입니다. 그는 '우리는 개처럼 살아야 한다. 개처럼 자신의 자연스러운 본성에 따라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주위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단 중앙부에 누운 듯 걸터앉은 모습이 그의 사상과 닮았습니다. 왼쪽 하단에 큰 책을 들고 무언가 열심히 쓰고 있는 사람은 피타고라스(BC580~BC500), 앞쪽에 대리석 책상에 턱을 괴고 있는 사람은 헤라클레이토스((그리스, BC540~BC480(추정))입니다.


이처럼 <아테네 학당>에는 다양한 이론과 학문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발전하고 있습니다. 세계를 풍유롭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논쟁과 탐구는 세계를 읽는 눈을 확장합니다. 왜곡을 최소화하는 장치입니다. 라파엘로는 <아테네 학당>을 통해 우리에게 진정한 학문의 전당,  진리를 탐구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아테네 학당>이라는 화폭을 너머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요?


재미있게도 화가는 같은 시대를 살지 않은 인물들을 <아테네 학당>이라는 가상공간 안에 배치하여 학문을 논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오른쪽 맨 끝 기둥 뒤에 숨어서 그들의 모습을 구경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라파엘로처럼 세상을 여러 각도에서, 균형감있게 볼 수 있기를 생각합니다.



<아테네 학당> 속 라파엘로







***우리 아이, 함께 키워요***(예비 초등 교장이 학부모님께 아침 편지를 보냅니다.)*
라파엘로 산치오의 <아테네 학당>을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다양성의 힘. 다름에서 새로운 생각이 싹틀 수 있습니다. 창의는 다르게 보기에서 탄생합니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만나면 쉽게 부딪히고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쉽게 상처받고 부서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른 각도로 생각해보면 다양한 시각, 다른 생각이 나의 사고를 확장시키고 성장하게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아테네 학당>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서로의 생각을 존중합니다. 서로 다른 생각이 결국 이 세계를 '더 잘' 이해하도록 도울 거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한 가지 이론만 존재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자신만 옳다고 주장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합니다. 부모님, 오늘은 <아테네 학당> 그림을 앞에 두고 '다름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 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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