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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나무 Jun 28. 2023

박수근, <아기 업은 소녀> 그림

엄마같은 언니가 있어서 따뜻했던 유년

박수근(1914~1965),  <아기 업은 소녀>


잊고 살았습니다. 그림을 보면서 나의 언니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나에게는 언니가 둘 있습니다. 엄마의 말에 따르면 큰언니는 남동생을 저렇게 업어가며 보살폈다고 합니다. 막내인 남동생과 큰언니는 여섯 살 차이가 나니까 아이가 아기를 돌본 셈이지요.


단발머리, 검정고무신.

우리 어린 날, 나의 언니도 단발머리에 검정고무신을 신었습니다. 종갓집에 두 살 터울로 딸 셋이 종종종 태어났습니다. 종갓집 장손집에 딸이 연달아 종종종 셋이었으니 엄마는 할머니 앞에 늘 죄인 같았습니다. 그 시절만 해도 아들 못 낳는 것이 여자의 죄로 여겨졌으니까요. 억울하지만 시대가 그랬습니다. 큰언니가 나와 네 살 터울, 작은 언니가 두 달 터울인데 언니는 나에게 엄마 같은 존재였습니다. 딸들이 많으면 머리카락 손질이 여간 성가시지 않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엄마는 언니들 머리카락은 짧게 단발머리를 고수했습니다. 하지만 막내딸인 나는 늘 머리카락을 길렀습니다. 엄마는 시장에 가는 날이면 나를 위해 그 시절에 귀했던, 긴 머리카락을 돌돌 말아 흘러내리지 않도록 동그란 틀 안에 고정시키는 비녀와 빨간 사과 같은 머리방울을 사 왔습니다. 큰언니가 아침 먹기 전에 마당을 쓰는 동안 작은 언니는 나의 긴 머리카락을 곱게 땋기도 하고 묶기도 하면서 학교 갈 준비를 했습니다. 작은 언니는 손이 야무졌습니다. 나 보다 겨우 두 살이 많은데 머리 땋고 손질하는 솜씨가 웬만한 어른보다 나았으니까요. 언니가 없었다면 엄마는 아마도 막내딸 머리카락을 길러볼 엄두를 내지 못했지 싶습니다. 언니가 있어서 나는 초등학교 시절 양갈래로 땋기도 하고, 뒤로 모아 묶어 비녀로 예쁘게 꾸며서 즐거운 마음으로 학교에 갈 수 있었습니다.


언니는 단발머리에 검정고무신을 신었습니다. 막내딸인 나는 검정고무신을 신은 기억이 없습니다. 고무신 양옆으로 꽃모양이 그려진 하양 고무신이나 알록달록 꽃고무신을 신었고 그 시절에 고급이었던 프로스펙스 운동화를 신었던 기억입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어쩌면 언니도 한 번쯤 머리카락을 길러보고 싶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언니도 꽃무늬 새겨진 하양 고무신이 좋아 보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옛말에 '형 만한 아우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언니가 있어서 집안의 걱정거리도 나의 몫은 아니었습니다. '언니야' 하고 쫑알쫑알 속엣말을 내뱉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박수근의 그림을 보며 먼저 태어났다는 이유로 동생을 돌보고 양보하며 자신의 욕구를 숨겼을 언니가 생각나서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생각해 보면 내가 나일 수 있는 이유, 언니가 있어서였구나 깨닫게 됩니다. 지금도 형제가 모이면 큰언니는 부지런히 우리 모두의 먹거리를 챙깁니다. 요리솜씨가 좋은 작은 언니는 손이 빠르고 뭐든 뚝딱 잘 만들어 냅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형제 넷이 남았습니다. 우리 어린 날처럼 우리는 말로 다 표현 못해도 서로 깊이 사랑하며 꽁당꽁당 돌보고 있습니다. 형제 넷 모두 흰머리 숭숭 생겼습니다. 앞으로의 시간들도 '서로 사랑하며' 풍요롭게 나이 들어갈 수 있기를 생각합니다.




***우리 아이, 함께 키워요***(예비 초등 교장이 학부모님께 아침 편지를 보냅니다.)*

박수근 <아이 업은 소녀>를 아이와 함께 보면서 '형제'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 보면 어떨까요? 화가 박수근이 살았던 시대에 우리의 언니들은 어떻게 형제끼리 사랑을 나누었는지, 엄마와 아빠의 어린 시절, 형제와 함께 했던 추억들은 무엇이 있는지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네요.
즐거울 때나 힘들 때 함께라서 서로에게 힘이 되는 형제애를 키워 준다면 외롭지 않게 세상과 대면할 수 있겠지요.(외동이와는 친구와의 우정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 보는 것도 좋습니다.)
* 요즘 학교는 학부모님과의 소통을 힘들어 하는 선생님들이 많습니다. 본질인 수업으로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민원과 아이들 생활지도로 힘들다고 합니다. 교사가 행복해야 교실도 아이들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행복한 빵집 사장님이 운영하는 빵집의 빵이 맛이 좋다고 하잖아요. 교장이 되면 선생님들이 수업과 아이들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학부모님와의 소통은 교장이 부지런히 하여 민원을 줄여야겠다고, '한 아이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듯이 가정에서도 아이들과 대화를 많이 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조금씩 준비해보려고 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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