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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나무 Aug 05. 2023

나의 최애(最愛) 그림

고흐, <밤의 카페 테라스>

고흐, 아를의 포럼 광장에 있는 밤의 카페 테라스, 1888년 9월


이번 주에 그린 두 번째 그림은 바깥에서 바라본 어떤 카페의 정경이다. 푸른 밤, 카페 테라스의 커다란 가스등이 불을 밝히고 있다. 그 옆으로 별이 반짝이는 파란 하늘이 보인다. <중략>  밤 풍경이나 밤이 주는 느낌, 혹은 밤 그 자체를 그 자리에서 그리는 일이 아주 흥미롭다.
                                                                                          <반 고흐, 영혼의 편지> 중에서





아껴둔 그림입니다. 나의 최애 그림입니다.


모든 것이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카페의 커다란 가스등에서 품어져 나오는 불빛은 테라스와 그 주변을 노랗게 밝힙니다. 9월이면 가을의 문턱에 들어선 즈음이고, 프랑스 아를에는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한 공기가 흐를 때이지요.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  따뜻함을 찾아 사람들은 카페로 발길을 옮깁니다. 카페에는 따끈한 차와 한 잔의 술이, 반겨주는 익숙한 얼굴이 있겠지요. 어느 때는 잔잔한, 어느 때는 다소 격앙된 음악이 흐르겠지요. 벽에는 한 시대를 끌고 온 그림이 한 점 걸려 있고, 간혹 이야기 도중에 그 그림에 눈길을 돌리기도 할 것입니다.


카페. 사람이 드나드는 곳. 혼자이기도 하면서 여럿이기도 한 공간. 생각이 멈추기도 하고 흐르기도 하는 곳. 노동의 고단함을 내려놓는 동시에 내일의 에너지를 충천하는 곳. 편안하지만 약간의 긴장이 기분 좋게 유지되는 곳. 시간이 전환되고 오늘이 내일로 이어지는 공간. 현실과 상상과 창조가 공존하는 곳. 카페는 나에게 매우 여러 가지 의미입니다.  


고흐는 어두운 밤 카페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카페 밖에서 그 정경을 화폭에 담고 있습니다. 그림에 대한 열정이 가득하지만 돈이 없어 동생 테오에게 의지하며,  언젠가는 성공하여 사랑하는 동생에게 떳떳하고 멋진 형이 되고 싶었던 고흐가 카페 밖에 서서 밤의 카페와 밤하늘을 바라봅니다. 추운 겨울, 밤거리의 카페 불빛은 더욱 따뜻하게 느껴지는 법입니다. 고흐는 자신의 현실은 비록 추운 겨울이지만, 언젠가 저 카페의 노란 불빛처럼 밝게, 저 밤하늘 초롱초롱 별처럼 빛날 것이라 희망했을 테지요. 이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고흐의 선하고 순수한 영혼이 노랗게, 파랗게 밤을 물들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저는 고흐가 참 맑은 영혼의 소유자라 생각합니다.) 예술에 대한 열정이 누구보다 치열했으나 가족에게 조차도 인정을 받지 못한 채 외롭게 화가의 길을 걸었던 고흐의 외로움이 이 아름다움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더 짙게 느껴집니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해야만 삶은 지속되니까요.

밤이 이처럼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지친 어깨를 토닥여주는 안온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둠의 장막으로 팍팍한 현실을 가리고 쉼의 자리를 따뜻하게 조명합니다. 그 위안으로  절망 너머 희망을 보고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른다'고 혼잣말을 다짐할 수 있는 것이지요. 고흐는 '밤 자체를 그 자리에서 그리는 일이 아주 흥미롭다'라고 동생 테오에게 담백하게 편지를 썼습니다. 그 담백한 고백이 그려낸 그림이 <밤의 카페 테라스>입니다. 담백한 고백, 침묵은 가장 큰 여운이기도 합니다.





***우리 아이 함께 키워요***

고흐를 보면서 안타까운 것은 부모로부터 사랑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한 상처는 삶의 뿌리까지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목사인 아버지의 기대에 따라 신학을 공부하고 사랑받는 아들이 되고 싶었지만 고흐는  그림을 너무나 사랑했던, '그림은 길이고, 혈관이고, 생명이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고흐의 아버지가 아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 꿈을 지지했더라면 조금은 덜 힘들게, 살아생전 한 점의 작품을 팔지 못했을지라도(사실은 딱 한 점 팔았다고 합니다), 스스로 생을 마감할 만큼의 고통 속으로 자신을 몰아가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글쎄요. 극한의 고통이 있었기에 극한의 아름다운 그림을 우리들이 감상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고흐에게 미안합니다. 더 오랫동안 살아서, 삶과 함께 나이 드는 그의 그림을 볼 수 있다면 싶지요. 그리고 노년의 고흐는 어떤 그림을 그렸을지, 이런저런 아쉬움이 이어집니다.
어린 날,  부모의 조건 없는 사랑 속에서 자란 아이들은 세상의 고난과 두려움  앞에서도 꿋꿋하게 서는 힘을 장착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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