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의 수조에 분사장치가 있어서
서로를 향해 물을 뿌린다.
같은 양의 물이 교환되므로 수조의
물은 같은 수위로 유지된다.
물의 양만 놓고 보면 하나마나한 일.
+ - = 0가 되는 일이 반복된다. 그러나
그 사이에 아치가 생기고, 간혹 무지개가
뜰지도 모르는 일이다.
*위의 액자 속 안규철 화가님의 글을 옮겨 썼습니다.
그렇지요.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매듭이 툭 풀리는 것이기도 합니다. 삶이란 결과로 보면 종착지는 누구에게나 똑같습니다. 그러니 참으로 공평하지요.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하나마나한 일'을 반복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물의 양'만 본다면 말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렇게 푹푹 찌는 폭염에도 하늘은 파랗고, 구름은 더욱 희며 뭉게뭉게 아름다운 모양을 시시각각 그려냅니다. 작렬하는 태양, 짙은 녹음, 한 계절을 오롯이 살아내고 있는 매미들의 농도 높은 울음소리. 눈 감고 느껴봅니다. 생명이 넘쳐나는 '여름'입니다.
나의 집은 17층입니다. 뒷 베란다에 서면 하늘이 가깝고, 푸른 산이 넓은 품으로 안아주는 곳입니다. 그곳엔 시간의 흐름과 계절의 변화가 있지요. 여름이면 뒷 베란다 창을 활짝 열어둡니다. 아침저녁으로 산들거리며 방문하는 산바람을 피부로 느끼는 것이 얼마나 셀레는 일인지요. 그리고 여름 노을은 또 어떤가요. 저녁 식사 후 뒷 베란다에 서서 서쪽 하늘을 바라봅니다. 날마다 날마다 저녁노을은 다른 모습으로 하늘을 채색합니다. 연한 핑크색인가 싶으면 어느 날은 연한 보랏빛이었다가 어느 날은 주홍으로, 짙은 장밋빛으로, 구름에 따라 바람에 따라 색칠하며 춤을 추다가 어둠 속으로 사라집니다. 아름답습니다. 우주의 신비, 신의 섭리까지 생각하다가 멍하니 감사하게 되지요.
여름에는 집안의 온 창을 열어둡니다. 낡은 나의 집의 장점은 앞 베란다와 뒷 베란다가 모두 있다는 것입니다. 한 여름밤 안방 창을 활짝 열어둔 채 침대에 누워 빈 하늘을 바라봅니다. 맑고 은은한 달이 클로즈업되면서 말을 걸어옵니다. 나의 침실로 찾아든 한 여름밤의 고요한 달님. 생(生)은 이처럼 신비롭고 아름답습니다. 더하기(+), 빼기(-), 궁극은 없음, 제로일까요? 그 사이에 만들어지는 아치의 우아함과 신비를,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를 발견하고 기뻐하며 누리는 삶이기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