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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나무 Sep 30. 2023

비엔나 알베르티나 미술관에서

그림을 본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우리는 비엔나에서 주어지는 자유시간에 '알베르티나 미술관'에 가기로 했다.

커피와 빵을 먹기 위해 아침부터 줄 서서 기다린다는 카페 데멜(DEMEL)에 꼭 가고 싶다는 친구가 있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1시간 정도였다. 우리돈으로 27,000원 정도 티켓값을 지불하면서  미술관을 선택한 것은 '언제 또 비엔나에 올 수 있을까', 또는 '피카소, 모네의 진품을 보고 싶다'와 같은 아주 평범한 이유에서였다.

카페 데멜(DEMEL)


그림. 그림의 매력은 무엇일까!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나는 왜 그림 앞에 서는가' 하는 생각으로 이어지면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이 떠오른다.

사물과 화가, 그리고 화가가 창조한 그림. 그 막역한 시간적 공간적 거리를 두고 선 관람객인 나.


정현종의 시 <방문객>은 '그림을 본다는 건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림은 화가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화가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로 치환된다.  


화가의 삶이 고스란히 담길 수밖에 없는 그림, 나의 삶으로 재해석될 수밖에 없는  거리감이 그림의 최고 매력이 아닐까. 상상의 폭이 극대화되는 데서 오는 모호함과 자유로움 말이다. 하얀 바탕에 검정 글자로만 이루어진 글보다 색채도 다채롭고 형태도 구체적인데 글보다 더욱 모호하여 자꾸만 상상하게 만드는 힘 말이다. 같은 그림을 보고 있는데도 사람마다 생각하고 느끼는 것이 천차만별이 되는 힘 말이다. 그림 옆에 관람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화가와 그림에 대한 설명이 친절하게 제시되어 있지만, 미안하게도 그림의 존재감이 커서 시선이 설명글에 진득하게 머물지는 못한다.




샤갈의 그림이다. 구름이 잔뜩 낀 하늘 아래 띄엄띄엄 농가가 있다. 멀리 밭을 가는 농부의 모습이 보인다. 빨간 지붕 위에 앉아 멀리 시선을 던지고 있는 사람, 지붕 위에 누워서 여유롭게 연을 날리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재미있다. 지붕은 집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나도 어릴  지붕 위에 올라가곤 했다. 아슬아슬 높은 곳에서 야릇한 설렘, 자유로움, 성취감을 느꼈던 것 같다. 울타리 안에는 하얀 염소 한 마리가 고결하게 앉아 있다. 짙고 맑은 파란색 배경 위에 새하얀 염소는 마치 고결한 신부를 연상하게 한다. 나무 울타리 앞에 희미하게 닭 한 마리가 보이고 뜬금없이 커다란 물고기 한 마리를 그려 넣은 까닭을 알 수 없다. 도대체 물고기의 정체가 궁금해지는데 상상으로 해답을 알 길이 없다. 하지만 다시 전체를 조망해 보면 그림은 '평화로운 농촌 마을의 한 때'로 다가온다. 일상이 흐르는 농촌의 한 때. 지붕 위에 올라서서 멍하니 바라보며 꿈을 꾸기도 했을 한 때. 아이 같은 엉뚱함과 밝음이 있는 그림. 도무지 연관성이 없을 것 같은 사물을(울타리 안에 큰 물고기) 배치한 까닭을 물어보고 싶게 하는 그림.

샤갈(1887~1985)은 러시아출신 유대인으로 제1차 세계대전, 러시아 혁명, 제2차 세계대전, 유대인 말살 정책 등 굵직한 역사적 사건을 모두 겪었고 그 과정에서 샤갈 인생과 예술의 뮤즈인 사랑하는 아내 벨라를 잃어야 했던, 굴곡 많은 삶을 살았다. 그럼에도 98세까지 장수했다.

"삶이 언젠가 끝나는 것이라면 삶을 사랑과 희망의 색으로 칠해야 한다."

그가 종종 했다는 말을 떠올리게 된다.



마르크 샤갈, 엄마와 젖먹이 아기의 모습이 담긴 그림, 온화함이 가득하다


피카소 그림 몇 점.

피카소는 워낙 유명하여 개인적으로 '코멘트를 할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미술사는 피가소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할만큼 그 영향력이 지대한데, 개인적으로  그의 그림은 나에게 이해하기 어려운 세계이다. 특히 그의 여성 편력과 자기중심적인 여성관, 이해할 수 없는 사생활은 그의 그림도 '좋아할 수 없게' 만드는 면이 많았다. 누군가의 영혼을 파괴하여 자신의 그림의 자양으로 삼았다면, 그의 그림이 그림 자체로 존경받아야 하는지도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알베르티나 미술관에서 피카소 그림을 보며 그의 그림에 '강한 끌림'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구체적인 사물은 온데 간데 없는데, 단순화된 형체와 선, 색에서 강렬한 힘이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끌리는 '매력'. 아무튼 알베르티나 미술관을 나오면서 '미치광이 피카소, 평론가들이 과대평가한 거지, 개인적으로 피가소는 좋아할 수 없어'하며 투덜거렸던 지극히 개인적인 관념이 '매력적이야. 유명한 이유를 알 것 같은걸'로 바뀌고 있었다. 그림은 이처럼 고정적이지 않고 아는 만큼 보이기도 하고 아는 만큼 시야가 좁아지기도 한다. 볼 때 마다 다르게 보이는 그림, 그래서 그림을 보는 일은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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