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많았던 까닭일까요. 나무 둥치에 초록 이끼가 물기를 머금고 생생하게 자랐습니다. 솔이끼인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과학시간 준비물로 솔이끼 채집을 나섰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봄꽃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들꽃은 아기자기, 별처럼 총총총 피었습니다.
며느리밥풀, 며느리밑씻개, 며느리배꼽은 유독 이 시기에 한창입니다.
꽃이름에 며느리가 붙은 까닭을 설명하곤 했던, 들꽃에 진심이었던,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선생님 얼굴을 어렴풋이 떠올립니다. 강원도 기행을 떠났던 때였지, 사북탄광도 갔었고, 정선 아우라지강 돌담길에 앉아 발을 씻었던 기억도.....기억은 숨어있다가 순간순간되살아납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 뒤를 돌아보고, 불쑥 지난 기억들이 되살아나는 것임을 느낍니다.
지금 이 순간을 산책하는 중입니다. 그런데도 나무와 풀을 만나는 사이, 불쑥불쑥 사람들이 끼어들고, 지나간 시간들이 되살아납니다. 지금 이 순간이 과거와 만나며 새로워집니다. 기억은 그 사람이기도 하지요.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 있어도, 기억은 아주 개인적인 영역입니다. 좋았던 기억이든, 슬펐던 기억이든, 그 기억들과 함께 내가 만나는 모든 것들이 다르게 내 안에서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것이 좋습니다. 내가 나일 수 있는 이유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