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시에 성당에 가야 하는데......"
"왜?"
"성탄판공성사가 있어. 성탄절 앞두고 고해성사를 해야 해. 설거지할 시간이 없네."
"제가 할게요!"
상근예비역 근무 중인 아들이 대답했다.
"아들, 헹굼은 깨끗이......"
그릇들을 싱크대에 수북이 쌓아두고 부랴부랴 옷을 주섬주섬 입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성당으로 향했다. 고해성사 미사는 벌써 시작되어 있었다. 맨 뒷좌석에 고요히 앉아 성탄판공성사의 의미에 대한 신부님의 말씀에 귀 기울였다. 불 꺼진 성당, 모두 눈을 감고 각자 자신의 기도 속으로 침잠했다. 나의 부족함과 잘못, 집착과 욕심이 낳은 후회,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 소중한 인연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으며 살고 싶은가, 부디 죽는 날까지 주변에 짐이 되지 않도록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그 나이 때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누리며 온화한 노후가 될 수 있기를 하는 생각으로까지, 십여분의 이십여분의 시간이었을까 , 오롯이 내 안의 연결고리도 없는 기도들로 가득한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고해성사 시간. 내 안의 솔직한 부끄러움, 욕심, 헛된 집착, 비뚤어진 잔상을 신부님에 울먹울먹 고백했다.
비가 조작조작 내리는 성당 마당에는 고해성사가 끝난 사람들이 삼삼오오 갓 구워진 붕어빵을 먹고 차를 나누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겨울비에 크리스마스 장식은 더욱 따뜻하게 느껴졌다. 지인을 만나 담소를 나눈 뒤 우산꽂이에서 우산을 찾았다. 아무리 찾아도 내 우산이 보이지 않았다. 비슷한 우산이 많아서였을까. 어쩔 수 없었다. 남의 우산을 들고 갈 수도 없는 일이었다. 아들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우산을 아무리 찾아도 안 보이네."
"누가 들고 갔단 말이네요. 성당 다닌다는 사람들이......"
"우산 들고 오라는 말이지요!"
엄마의 마음을 꿰뚫어 읽고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알겠어요. 잠시만 기다려요" 하고 다정하게 대답했다. 예전에는 뭐라도 투덜거림을 덧붙였을 텐데, 결국 올 거면서도 불평 한마디는 널어놓았을 텐데, '어느 순간 엄마인 내가 마음으로 기댈 곳으로 성장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과 함께 나란히 우산을 쓰고 오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신앙을 가진 사람들도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고, 같은 신앙인이라고 무작정 믿으면 안 된다며 엄마 단속을 했다.
집에 돌아와서 싱크대 안을 보니 미소가 절로 피어올랐다. 설거지도 야무지게 해 놓았다. 건조대에 이리저리 놓여있는 그릇들에 아들 설거지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똑똑.
아들방에 들어갔다.
"고마워. 설거지도 예쁘게 하고 우산도 들고 와주어 고마워!"
다 큰 아들 얼굴에 볼을 비비며 고맙다고 말했더니 아들도 해맑게 웃었다.
사랑은 곳곳에 있다. 친절도 곳곳에 있다. 따뜻함은 소박한 곳곳에도 있다.
아들은 엄마의 신앙을 가장 먼저 함께 해주었다. 지난 11월에 세례를 받았다. 함께 미사에 가고 신부님 강론을 듣고 공감하는 토양이 넓어지는 은총을 누리고 있다. 상근예비역 복무 기간 동안 이 감사를 꼬옥 보듬어 간직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