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상에서 연말연시를 보내기는 처음입니다.

by lee나무

사람 사는 일에 사건 사고가 어떻게 없을 수 있겠어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것이 이미 일어난 일은 받아들이고, '이만하길 다행입니다. 이런 시간조차도 감사합니다'라고 사람의 영역이 아닌 부분에 대해 겸손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난 11월 6학년 수학여행을 다녀온 후로 감기가 낫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약국에서 종합감기약을 먹었어요. 지금까지 대개의 경우 감기 초입에 종합감기약과 액상의 한약타입을 먹으면 감기가 곧잘 나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속으로 코로나 한번 안걸렸는데 하는 자부심을 바닥으로 내려놓고 동네 병원에서 약을 지었습니다. 4일 분의 약을 먹고 주말을 쉬고 또 4일 분의 약을 먹고 주말을 쉬기를 반복했는데 컨디션이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호흡이 힘들고 코막힘과 가래도 있고 기침을 하면 가슴이 아프기도 했지만, 열이 없었고 밤에도 기침 없이 곧잘 자기도 하여 '면역력이 많이 약해졌나 보다. 잘 먹고 습도 조절 잘하고 쉬면 괜찮아지겠지'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1주일이 지나도 입맛도 없고 기침 가래도 계속되어 병원을 옮겨 약처방을 받아먹었습니다. 약을 너무 많이 먹으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에 약을 끊고 유튜브에서 가래 기침에 좋은 방법을 찾아보고 코 세척도 하고 무차도 마시고 요가도 쉬면서 가능한 퇴근 후에는 몸을 쉬었습니다.


11월 말에서 12월은 교감 업무 성수기입니다. 교원 인사, 교원 다면평가, 각종 업적 평가 등 인사와 평가 업무가 집중되어 있습니다. 학교도 학년말 마무리와 생활기록부 작성 등으로 각종 회의가 많습니다. 학교의 모든 일에 교감이 관여하지 않는 일은 없습니다. 그 와중에 남편이 방학 전날 축제일에 고등학교 1학년 학생과 왼쪽 팔로 팔씨름을 하다가 그만 팔꿈치가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집안일을 도와주던 남편 손도 없고, 병원도 왔다 갔다 해야 하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나의 컨디션은 하루하루 나빠졌습니다. 취업 준비하는 딸, 상근예비역 복무 중인 아들이 집에 와 있어서 아이들 밥과 도시락을 챙겨야 하니 정밀검사를 해볼 시간적 여유를 내지를 못했습니다. 학교일도 집안일도 손을 놓지 못한 채 시간이 흘렀습니다.


드디어 남편이 퇴원하는 날 아침에 남편 옷가지를 챙겨서 폐 CT를 찍어보기 위해 우리 지역의 큰 병원으로 갔습니다. 토요일이라 휴진하는 의사 선생님들이 많고 호흡기내과는 의사 한분만 근무 중이며 예약 환자가 아니면 진료가 불가능하다고 원무과 직원이 냉정하게 이야기했습니다. 그것도 호흡기내과 예약은 19일이 되어야 가능하다며 남일이라고 무신경하게 말했습니다.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사람은 언제나 정이 가지 않습니다. '이렇게 호흡이 곤란하고 기침할 때 가슴팍이 아픈데 19일을 기다리라고 말도 안 돼'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현듯 병원 원장과 친분이 가까운 고모부가 생각났습니다. 고모부에게 전화를 걸어 이러쿵저러쿵 나의 사정을 자초지종 설명했습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고 고모부의 도움으로 30일 토요일 아침에 호흡기내과가 아닌 신장내과 의사 선생님의 진료를 받고 폐 CT를 찍을 수 있었습니다.


결과는 폐렴이었습니다. 폐사진을 보니 폐가 하얗게 되어 있었습니다. 몸에서 그렇게 신호를 보냈는데도 현실의 끈을 잡고 일한다고 폐가 하얗게 아파하고 있었습니다. 입원치료가 필요하다고 하여 집에 가서 병원생활에 필요한 세면도구, 책 2권, 수첩, 노트북 등을 챙겨 2023년의 마지막 날을 하루 앞둔 30일 입원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2023년 12월 31일. 2023년의 마지막 날입니다. 병원에 입원하니 비로소 쉬게 됩니다. 모든 노동으로부터 손을 놓고 오로지 나만을 위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병상의 시간이 감사합니다. 집에 남은 가족들이 조금은 외로운 연말연시를 보낼 것 같아서 안타까운 마음도 들지만, 그리고 시끌벅적한 마무리와 출발도 좋지만 고요하게 각자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가족들에게 2023년 좋았던 일들, 잘한 일들, 감사한 일들을 써서 보내고, 엄마는 너무 잘 있으니 걱정 말고, 2023년에게 굿바이 2024년에게 웰컴 하는 분위기를 스스로 만들어 보라고 권했습니다.


책을 읽고 친구들과 카톡 안부를 전하고 그래도 시간이 남아서 낮잠도 자고 영화도 한 편 보고 나니 병상의 통유리창에 2023년 마지막 해가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나의 병상 통유리창으로 2023년 마지막 해가 넘어갑니다. 안녕~~ 2023년. 고마웠어.



2023년 안녕! 잘 가~, 올 한 해도 고마웠어.


내일 아침에는 동쪽 끝으로 가서 해돋이를 볼 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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