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기

병상 생활 6일째 되는 날의 생각

by lee나무

입원해 있으니 나의 시간이 많아 좋습니다. 평소에 하지 못했던 것들을 하면서 빈둥빈둥 시간을 보내는 것이 묘하게 즐겁기도 하고 평안합니다. 간호사님이 시간에 맞춰 항생제 주사, 기침 가래 삭이는 주사, 스테로이드 주사, 먹는 약을 챙겨주시고 때에 맞춰 끼니가 나오니, 내가 할 일은 사이에 주어지는 자유시간을 순간 순간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채우면 됩니다. <헤어질 결심>, <가재가 노래하는 곳>, <국제시장>을 보았고 정재승의 <열두 발자국>을 다시 읽었습니다. 낮잠을 자고 식사 후에는 복도를 왔다 갔다 하며 가볍게 걷기를 합니다. 병원 복도에서 걷다 보면 본의 아니게 사람들의 이야기를 엿듣게 됩니다. 입원한 남편의 건강을 걱정하는 할머니, 월급을 꼬박꼬박 갖다 주어야 남편이지 하며 남편에 대한 불만을 친구에게 토로하는 아주머니. 세상의 단면이 병원 안에도 고스란히 있습니다.


30일에 입원했으니 오늘이 벌써 2024년이 시작된 지 나흘째 되는 날입니다. 병상생활 6일째.

오늘 아침에는 5시에 일어나 폐의 호전 상태를 체크하기 위한 엑스레이 촬영을 했고, 염증수치 체크를 위해 피검사를 했습니다. 링거주사도 왼쪽팔에서 오른팔로 옮겨 달았습니다. 서쪽 통유리창 커튼을 걷어내니 세상이 변함없이 거기 있습니다. 멀리 공단에는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혼잣말로 '저기가 아이파크 아파트, 저쪽은 용지못, 메타세쿼이아 나무가 있는 저쪽이 관공서 거리, 도의회 건물......' 하며 중얼중얼 시선을 던져봅니다. 시끌시끌 세상도 유리창으로 바라보면 고요하고 평화롭기만 합니다.


병상에 있지만 교감의 일은 누군가 대신할 수 없어서 결재도 하고 병역휴직 후 복직한 선생님의 호봉 재획정 작업도 했습니다. 어제는 가입학식이 있는 날이어서 교무를 비롯한 몇몇 부장선생님들이 학교에 출근을 했습니다. 출근해서 나의 입원 소식을 들었다며 안부전화를 주었습니다.

"어떡해요! 교감선생님. 그니까 감기가 그렇게 안 떨어지더니. 괜찮으세요?"

"교감선생님, 빨리 나으세요. 1학년 학부모님 학교폭력 신고건은 교장선생님과 의논해서 할 테니 걱정 마세요."

"그러니까 병을 키우면 안 되다고 했잖아요. 빨리 큰 병원에 가서 CT를 찍어봤어야 했는데......"

"걱정 마세요. 요즘 약이 좋아서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니까 이 참에 푹 쉬시고 건강 회복하세요."

"교감선생님, 걱정 마세요. 학교일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필요한 거 말씀만 하세요."

서로 전화를 돌려가며 나의 건강을 걱정해 주고 응원하는 말을 해주었습니다. 선생님들과 격 없이 지내고 있다고 혼자서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목소리에서 진실된 친밀감이 느껴져서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어제는 대학 때 같이 자취를 했던 후배가 병문안을 왔습니다. 2일에 점심을 같이 먹기로 했는데 내가 입원하는 바람에 만나지 못했습니다. 후배의 남편이 4년간의 중국 주재원 생활을 끝내고 귀국하면서 귀한 차를 가져왔다며 그 비싼 차를 "언니, 차 좋아하잖아." 하며 선물로 주었습니다. 정세랑 작가의 <피프티 피플>, 유시민의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2권도 가져왔습니다. 자주 만나지 못해도 오랜 세월 알고 지내는 후배는 나의 취향을 잘 알고 있습니다. 묵은지처럼 깊은 맛은 오랜 관계 안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병원 1층 커피숍에서 2시간 넘게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서로에 대해, 일에 대해, 우리가 아는 지인들에 대해, 요즘 시간을 보내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병이 다 나은 듯하였습니다.


1일 새해 첫날에는 도교육청에서 같이 근무했던, 나의 직속 과장이었던, 현재는 국장으로 재직하고 계신, 하지만 정말 친구 같은 박국장님이 3.15 공원 참배하고 오시는 길이라며 병문안을 왔습니다.

"자기 좋아하는 빵 사 왔어. 맛있는 것만 골라서. 브레드웜에서."

일부러 빵집까지 들르기 번거로웠을 텐데 내가 브레드웜 빵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그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시니 고마웠습니다. 카톡으로 새해 안부 인사를 나누면서 내가 폐렴으로 입원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폐렴이라니... 얼마나 입원해 있어야 해? 보고 싶은 사람은 미루지 말고 그때그때 봐야 된다는 걸 다시 한번 느껴."

이렇게 카톡문자를 보내오셨는데, 직접 찾아오실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비슷한 면이 많습니다. 책과 여행을 좋아하고 내향적이며 소수의 사람을 깊이 사귀는 유형입니다. 음악을 사랑하고 권위를 싫어합니다. 10살 나이 차이가 나는데 만나기만 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게 됩니다. 주사 시간이라며 간호사님의 호출이 없었다면 아마도 몇 시간을 죽이며 이야기를 나누었을지도 모릅니다.


오늘 혈액검사에서는 염증수치가 호전되었고 토요일 검사에서 정상화되면 퇴원 후 외래진료를 진행하자고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병상생활도 이틀이면 끝나는구나 생각하니 갑자기 이 병실이 더욱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병원의 맨 서쪽 7층에 위치한 넓은 통유리가 시원한 병실. 어둠이 가라앉은 으스럼 새벽녘에서 붉은 해가 아름다운 노을을 그려내는 해 질 녘까지 다정하게 나에게 펼쳐내던 통유리창이 그리워질 것 같습니다. 그렇게 상념에 젖어 바깥 풍경을 바라보는고 있는데 사람들이 스쳐갑니다.


"교감선생님, 제가 관리자울렁증이 있는데 언니 같은 교감선생님과 함께 하며 극복되고 있습니다. 내년에도 꼭 함께하고 싶어요.^^"

"우리 멋지고 예쁘신 교감선생님, 올 한 해 너무너무 고생 많으셨습니다. 함께 할 수 있어서 더없이 행복한 한 해였습니다."

"특수학급 상황이 힘들어도 항상 이야기 들어주시고 혜안으로 길을 알려주시는 교감선생님 덕분에 작년도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이해인 수녀님 사계절 기도책 있어? 기도집모음이라 한 권 사보려고. 너와 같이."


카톡 문자를 다시 보면서 비록 그들의 말이 인사치레일지라도 '온기'가 느꼈습니다. 이 온기. 사람의 온기. 나는 혼자 너무나 잘 노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사람의 '온기' 없이 살 수 없는 사람임을 느낍니다. 이 온기들이 나를 지탱하고 내가 살아가는 이유이기도 하다는 생각입니다.


나의 병상의 시원한 통유리창, 이 곳을 떠나면 나는 이곳이 그리워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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