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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나무 Jan 05. 2024

관계

변은미 작가의 <관계> 그림을 바라보며

몸 상태가 회복되면서 걷기의 반경을 넓혀보기로 했습니다. 외래 진료 환자들이 드나드는 2층은 복도가 넓고 출입을 통제하는 문이 별도로 없어서 긴 동선으로 걸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복도 벽에는 그림과 사진이 전시되어 있어 발길을 붙잡기도 합니다. 눈길을 끄는 그림 앞에 멈춰 섰습니다. 추상화는 구체성이 사라져 무엇을 표현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나의 경우에는 추상화는 실체가 없는 '느낌 그 자체'로 인식되는 것 같습니다. 그림을 보는 기준이 '이 그림은 느낌이 좋아, 혹은 이 그림을 보니 기분이 좋아'와 같은 정도에서 그치는 아기발걸음 수준입니다.


그림을 멀리서 전체적으로 조망하다가 '뭐지?' 궁금해하며 가까이 다가가 형제를 살펴봅니다. 사람의 형상이 얽히고설킨 모습입니다. '아, 사람이었구나!' 그리고 그림 왼쪽에 붙어있는 작가와 그림의 제목에 대한 설명을 읽어봅니다. 제목이 '관계'입니다. '아, 그래서 사람의 형상을 이토록 복잡하게 얽히고설키게 표현했구나!' '그런데 위아래에 직사각형 모양을 가로로 길게 배열한 것은 무엇을 의미하지?' '색조를 명도와 채도를 달리하여 보랏빛으로 통일감과 연결감을 준 것은 편안함과 안정감을 주는 것 같아 느낌이 좋아.' '게다가 아랫부분에 보랏빛과 대조되는 청록색을 배치하여 단조롭지 않고 그림에 생동감을 주는 것 같은데.' '그런데 전체적인 형상이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 있는 걸까?' 추상그림을 보고 있으면 의문만 가득해집니다. 도대체 작가의 의도에 10분의 1도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모호함이 답답하기도 합니다. 정답을 요구하는 문화에 길들여져서 그럴까요? 아무튼 결론은 '모르겠어. 그래도 이 그림 마음에 든다. 집이 넓으면 한 벽면에 걸어둬도 좋겠는걸.' 하고 돌아섭니다.


변은미, 관계(Relationship), 오사카 국제미술제 초대작가상 수장, 도쿄 국제미술제 초대작가상 수상


변은미 작가의 <관계>라는 그림을 자세히 보면 수많은 사람(이중섭의 사람 형체를 모티브로 했다고 합니다.)이 안고, 마주 보고, 뒤섞이고, 겹쳐지고, 역방향으로 순방향으로 얽히고 그래서 형체가 없어지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관계'란 이토록 복잡한 것임을 표현하고자 한 것일까요? 그 관계 속에서 몇몇은 모양새를 반듯하게 직사각형의 흔들림 없는 형태를 갖추고 배열되며 위, 아래에서 삶의 균형과 힘을 잃지 않고 지탱하는 관계로 형성되는 것을 표현하는 것일까요? 그리고 삶 전체를 통해 '느낌이 좋은 한 폭의 그림'이, 자기만의 그림이 되는 것일까요? 


수많은 사람들 중에 내 삶의 균형과 힘이 되는 사람들을 떠올려 봅니다. 


가까운 행복  -이해인 수녀님-


산 너머 산

바다 건너 바다

마음 뒤의 마음

그리고 가장 완전한

꿈속의 어떤 사람


상상 속에 있는 것은

언제나 멀어서

아름답지


그러나 내가

오늘도 가까이

안아야 할 행복은


바로  앞의 산

바로 앞의 바다

바로 앞의 내 마음

바로  앞의 그 사람


놓치지 말자

보내지 말자


바로 앞의 '관계'에 더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기를 하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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