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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나무 Jan 16. 2024

기쁨

강미선, 생명의 기원 "꽃"을 바라보며

7일 밤을 병원에서 보내고 8일째 되는 토요일 혈액검사 결과 염증수치가 1 아래로 떨어져서 퇴원을 하자고 하였습니다. 주렁주렁 링거 주사도 빼고 팔이 홀가분해졌습니다. 병원에서의 마지막 기계 호흡기 치료도 끝냈습니다. 환자복을 벗고 입원할 때 입었던 나의 티셔츠와 청바지로 갈아입으니 몸도 마음도 홀가분한 느낌이었습니다. 원무과에 내려가서 퇴원 수속을 밟으라는 연락을 받고 1층으로 내려갔습니다. 토요일 오전 진료를 보기 위한 환자들의 바쁜 걸음이 왠지 활기차 보이기도 했습니다. 왼쪽 원무과로 몸을 향하는데 벽에 걸린 환한 그림이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좀 있다가 자세히 봐야지' 하며 대기표를 받고 나의 순번이 되려면 얼마간의 시간이 걸릴지 가늠한 후 그림을 자세히 보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바라보는 순간, 환한 기쁨이 전해지는 그림입니다. 기쁘고 행복한 순간을 표현할 색깔을 찾으라고 한다면, 생명으로 가득해지는 순간을 이미지화할 자연의 일부를 찾으라고 한다면, 아마도 꽃이 활짝 핀, 노랑과 연분홍, 연보라 등 따뜻한 기운이 넘실대는 이런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비가 날아들고 꽃술이 바람에 흔들리고 멀리서 하얗고 맑은 향기가 날아드는 것 같은, 투명한 물방울이 충만하여 꽃들은 물기 가득 품고 최고로 아름다운 순간을 펼쳐내고 있습니다. 보는 것만으로 몸과 마음의 에너지가 밝아집니다. 기분이 좋아집니다.


작품명이 생명의 기원 "꽃"(The Origin of Life,' Flower')입니다. "꽃은 희생함으로써 열매를 맺는다는 점을 부각하고, 인간도 자신을 던져 타인을 구제할 때 가장 큰 사랑의 존재가치를 갖게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특히 인술을 실천하는 의료진에 무한한 기운을 부여하고 내원환자에게는 꿈과 희망을 선사하려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 라는 설명글을 읽습니다.


'꽃은 희생함으로써 열매를  맺는다'는 설명을 덧붙이고 있는데, 글쎄요, 이 그림을 보면서 나는 '희생'이라는 단어를 1도 떠올리지 않았습니다. 꽃은 그 자체로 자신의 생명을 최고로 발휘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자신 안에 품어왔던 색깔, 모습, 향기, 감각으로 존재 자체로 주변과 자연스럽게 소통합니다. 그 자체로 아름답고 생명이 충만합니다. 그 자체로 아름다웠더니 다른 존재에게 감동이 되고 기쁨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꽃이 진 자리 열매가, 꽃을 기억하고 품은 씨앗이 맺히는 것이지요. '인간도 자신을 던져 타인을 구제할 때 가장 큰 존재가치를 갖게 된다'는 것은 병원이라서, '인술을 실천하는 의료진에게 무한한 기운을 부여'하고자 하는 의도가 커서 이런 설명을 덧붙인 듯합니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병원이니 그 무게를 십분 공감합니다.


하지만 나는 괜한 반발심이 생깁니다. 누가 누구를 위해 자신을 던지는 일은 용납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내 삶을 충만하게 사는 것이 결국 타인의 삶과 연결되어 좋은 영향을 미친다면 좋지 않을까 이 정도로 만족합니다. 의료진들도 의료 행위 안에서 자신의 색깔, 모습, 지식, 향기, 감각을 만개할 때 그 에너지가 환자들에게 안정감, 희망으로 전해지겠지요.


아무튼, 어떤 의도에서였든 이 그림을 바라보며 나는 기뻤고, 가정의 단란한 화목을 떠올렸고, 바꿀 수 없는 행복 같은 것들을 떠올렸습니다. 결국에는 이 그림을 1층 로비에 걸어둔 까닭이 통했네요.


강미선, 생명의 기원 "꽃"(The Origin of Life, 'Flower'),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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