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팔꿈치에 깁스를 한 채 오른손 한 손으로 운전하는 남편 옆에 편안하게 앉아서 쫑알쫑알거립니다.
"하하하. 맞아."
눈 덮인 겨울 풍경이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겨울 북해도 여행을 계획했었는데 폐렴으로 입원하고 남편도 골절상을 입는 바람에 취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신에 서로의 몸 상태가 좀 나아지면 제주라도 다녀오자고 계획을 변경했습니다. 며칠 일기예보에서는 제주 폭설 소식이 이어졌습니다. 예정대로 출발할 수 있을지 걱정도 했습니다. 다행히 우리는 제주에 도착했고, 폭설 덕분에 하얀 눈이 소복소복 쌓여서 그려내는 아름다운 제주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20대 끝자락에 나뭇가지 가지마다 눈꽃을 피워내던 한라산을 기억합니다. 눈이 펑펑 쏟아져서 나중에는 시야가 하얗게 가려지고 마침내는 등산길이 통제되어 되돌아내려왔지만, 하얀 눈이 그려낸 놀라운 아름다움을 나는 또렷이 기억합니다. 자연이 만들어내는 절정의 풍경은 인간의 감탄으로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그리고 딸이 여섯 살, 아들이 세 살 무렵이었을 때, 하얗게 눈 덮인 강릉 양떼목장 풍경은 처음 눈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천진하고 놀라운 눈빛과 신나는 썰매와 함께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고 유난히 추위에 취약한 나는 눈 덮인 곳으로 여행하는 것을 망설이고 미루고 하였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오랜만이었기 때문일까요. 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인, 발아래 폭신 거리며 뽀드득 소리 내는, 온 사물이 하얀 눈옷을 입은 풍경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습니다.
"저기 부처님 봐봐. 눈옷을 입고 있으니 더 귀엽고 인자해 보이지."
"저 돌담 봐봐. 사이사이 하얀 눈이 있으니까 따뜻해 보이지 않아."
"저기 기왓장 쌓아둔 거 봐봐. 추상그림 같지. 예쁘다. 그치."
절 마당도 하얗습니다. 절 건물 벽면에 그려진 그림을 보고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자식을 낳아 기르는 과정이 담겨 있네. 종교적 가르침은 부모가 자식을 낳아 기르는 과정과 연관이 많이 되는 것 같아."
"그런데 젖먹이는 그림이랑 이유식 먹는 그림은 순서가 바뀌어야겠네." 남편이 웃으며 덧붙입니다.
스님이 다가오며 말을 겁니다.
"무슨 그림인지 알겠어요? '부모은중경'입니다."
스님의 따듯한 말씀을 들으며, 온 세상을 하얗게 새롭게 하는 눈 같은 부모님의 사랑을 떠올렸습니다. 눈이 가득가득 내려서 포근포근한 제주 관음사에서 이 겨울의 경이로운 아름다움에 감사했고 새로운 힘도 얻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