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책상에 앉아 마감일에 허둥대지 않기 위해 미리 주어진 일을 처리하면서도 마음은 저 창밖을 향해 있었습니다. 시원하게 쏟아지는 빗줄기, 물 먹어 폭신해진 운동장에 나가고 싶은 마음이 점점 커집니다. 하던 일을 멈추고 슬리퍼를 신고 우산을 들고 마음은 이미 설레고 신났습니다. 장마철이 좋은 유일한 이유, 맨발로 부드러워진 흙을 실컷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북적대던 운동장이 한가해지고, 넓은 운동장은 나의 차지가 됩니다. 비가 떨어지며 그려내는 동심원을 바라보고 먼 산에 걸린 비구름을 감상합니다. 촉촉한 흙이 발가락 사이에서 놀고 웅덩이에 첨벙 대기도 합니다. 이 시간은 아이로 돌아가는 시간입니다. 누가 뭐라 해도 명랑하고 천진한 유년의 소녀로 회귀하는 시간입니다. 이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혼자 놀다 보면 물과 흙의 기운에 몸과 마음이 정화되어 가벼워집니다.
멀리 아빠와 아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워 카메라에 담아 보았습니다. 아이는 비가 신기하고 촉촉하고 부드러운 흙놀이에 신이 납니다. 아빠는 묵묵히 아이의 우산이 됩니다. 맞아요. 어른은 아이의 우산이 되어야지요. 아이가 세상을 실컷 탐험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