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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나무 Nov 06. 2024

병상일지

마취기가 거의 사라졌다. 2인 병실을 홀로 쓰고 있다. 신경 쓸 타인이 없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오 년 전 과로였는지 원인을 정확히 모르지만 아침에 일어나서 안경을 쓰지 않은 채 거실벽에 걸린 시간을 확인하러 다가서다가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말았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고 정신이 들었을 때 눈 주위와 뺨에 피멍이 올라오고 있었다. 아직도 그때 왜 쓰러졌는지 이유를 분명하게 모른다. 아무튼 뇌 CT를 비롯한 여러 검사를 했다. 그때 부비동염이 심하고 코안에 연골도 휘어져있다는 말을 들었다. 이비인후과에서 축농증 약을 처방받아먹었지만 약이 독해 생활이 불편하길래 자의적으로 약을 끊고 치료를 멈추었다. 코막힘, 환절기 감기는 나에게 매우 익숙하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일상을 살았다. 지난해 폐렴으로 입원했을 때 의사 선생님은 내게 종종 말씀하셨다. 비염이 심한데 본인만 모른다고. 스스로도 올해부터는 코막힘, 콧물, 카레의 빈도가 잦아짐을 느끼고 있었다. 불편함도 모른 척 무시해 버리기에는 마음에 걸리는 날이 늘어났다.


나는 병원을 잘 가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겁도 많다. 웬만하면 약국에서 일반의약품을 먹고 견딘다. 코가 불편한데도 이비인후과 진료가 겁나기도 해서 피해왔다. 그러다 이 사달이 나고 만 것이다. 오십 줄에 들면 병원과 친해지겠다고 다짐도 했으면서. 스스로 다독이며 이비인후과에 갔는데 의사 선생님께 야단을 톡톡히 맞았다. 오 년 전 진료 기록을 보시며 제멋대로 치료를 멈춘 무식한 환자를 한심해하셨다.


"코 안에 물혹이 있어요. 수술해야 돼."

"코뼈도 오른쪽으로 휘어서 숨쉬기 힘들 텐데, 괜찮아요?"

"좀 불편하긴 한데 그냥......"

요 근래 들어서 밤이면 콧물이 목구멍으로 넘어가 기침이 나서 잠을 설치는 날이 늘었었다.  나의 게으름, 무딤, 무식으로 병을 키웠고 결국 수술을 결심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팔십 대까지 산다면 이후 30년은 숨을 편하게 쉬면서 살아보자. 냄새도 실컷 맡아보고 싶다. 세상의 모든 냄새에 대한 기억을 갖고 싶다. '


코에서 피가 난다. 이틀 간은 피가 날 거라고 했다. 약이 좋아서 그런지 통증은 거의 없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은 후 '작별하지 않는다'를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스스로 힘들어지는 상황 속으로 나를 밀어 넣을 자신이 없었다. 어느 날, 내 마음이 허락할 때 봐야지 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그 책을 병실에 갖고 왔다. 마취기가 사라지고 정신이 맑아지니, 미국 대선 소식으로 도배한 TV도 보기 싫어서 책을 펼쳐 들었다. 시작은, 아직은, 그렇게 힘들지 않아서 읽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나의 캘리 책갈피, 그리하여 이 세상에서 별처럼 빛날 수 있도록 하십시오(필립피서2.15.)


나의 독자님들은 불편하면 제때제때 치료 잘 받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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