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에 가는 김에 해운대에서 한밤 묵었다. 11월 초, 온화한 날씨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해운대 모래밭에서 저무는 가을의 끝을 잡고 추억을 그려내고 있었다. 젊은이는 젊은이대로, 가족은 가족대로, 연인은 여인대로, 중년은 또 중년의 모습으로 바다와 파도와 모래해변을 그들만의 것으로 붙잡고 있었다. 사람들이 각자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가만 바라보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모두 이 순간 행복하기만 하길' 바라게 된다. 살아낸다고 복잡했던 마음들 모두 잊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겠다 싶은 마음 하나 챙겨가길 바라게 된다.
해가 지고, 먼 바다와 하늘은 까맣다. 바람이 분다. 파도는 저 멀리서 큰 힘으로 침묵한 채 다가와 해안에 이르러 하얗게 고개를 들고 밀려왔다가 모래사장에서 하얀 거품이 되어 퍼졌다가 사라진다. 파도가 지닌 내면의 응축된 힘은 멀리서는 잔잔해 보인다.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은 아니다. 응축하기 위해 잔잔한 시간이 필요하다.
모래밭과 인도가 연결되는 계단에 사람들이 무리지어 있다. 버스킹 공연이 군데 군데서 펼쳐지고 있다. 통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사람을 보니 나이가 지긋한 중년이다. '가족을 위해 일하느라 아마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미루었겠지', 그리고 '의무가 조금은 가벼워진 오십대를 지나며 모른 척했던 꿈을 꺼내어 자신을 사랑하는 삶을 살기 시작했겠지', 상상하며 그들의 음악에 손뼉도 치고 몸짓도 하며 그 시간 속에 머무른다. 있는 곳에, 누군가 마련한 그대로의 시간 속에 머무는 것, 맡겨보는 것에서 익숙한 평화를 경험한다.
저녁은 밤을 향해 깊어가고, 나는 아침의 해변을 상상하고, 햇살을 안은 모래밭을 맨발로 걸어야지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