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5시 20분경 재잘대는 새소리에 눈을 뜬다.
쉼터의 아침은 새소리다.
도시에서는 침대 위에서 뒹굴 거리며 주섬주섬 스마트폰을 찾아 뉴스에, 유튜브에, 브런치에 눈팅을 하며 게으름을 피운다.
시골 쉼터에서는 이른 시간임에도 벌떡 일어나게 된다. 밭 앞에 키 큰 소나무, 바람, 멀리 잔잔한 바다, 더 멀리 정겨운 산이 나를 꼬드기며 재촉한다. 이런 유혹은 언제든지 오케이다.
오늘은 아랫마을로 산책하기로 한다. 이곳 사람들이 농사짓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 참깨, 고추, 고구마가 심어진 밭을 본다. 밭이 참 예쁘다. 정갈하다. 나도 저렇게 농사를 지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 처음은 무리하지 않으려 한다. 2 고랑 정도로 해서 작은 텃밭을 가꿀 계획이다. 그리고 쉼터 앞마당에 계절의 아름다움을 가져다줄 꽃과 나무를 몇 그루 심으려 생각 중이다.)
풀을 뽑아보았지만 밭을 정갈하고 예쁘게 관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몸으로 배우고 있다. 여름 농사는 풀과의 전쟁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서 아침저녁으로 풀 뽑는 일에 열심이다. 땀 흘리며 1시간에서 2시간 정도 일해보니, 힘이 들기도 하지만, 묘하게 몰입하게 되고 정화되는 기분을 느낀다. 안 쓰던 근육을 쓰니 팔과 어깨가 뭉치고 허리도 뻐근한데, 알 수 없는 충만함 같은 것을 느끼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나는 배고픔을 잘 못 참고 삼시 세끼를 정해진 시간에 먹어야 하는 타입인데, 풀을 뽑다 보면 배고픔도 잊는다는 것. 그만큼 몰입감이 크다. 노동 후 씻고 텃밭에서 갓 딴 고추를 된장에 찍어 먹기만 해도 밥이 꿀맛인 거다. 조촐한 밥상인데 이처럼 맛있게 느껴지는 신기함.
버트런트 러셀은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에서 행복이란 의외로 단순하고 생리적인 문제라고 이야기한다. 정말 내가 불행하다면 내 식단을 바꾼다든지, 아니면 하루에 몇 킬로를 걷는다든지, 인간이 바로 동물이라는 점을 잊지 않고 실천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으로 바로 행복을 만들 수 있다는 것. 땀 흘리고 풀을 뽑으며 나는 러셀의 생각을 몸으로 수긍하고 있다. 몸을 움직였을 뿐인데 뿌듯함, 만족감, 충만함, 여유, 자유로움, 살아있음 이런 감정을 체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