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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그날 사진

책 그리고 꽃

마음이 전해지면 행복해집니다.

by lee나무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나는 '행복해' 하고 자주 말하는 사람입니다.


이웃집 강아지의 맑은 눈을 보고도 행복하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서 들이쉬는 상쾌한 공기 한 줌에 행복하고, 길가에 떨어진 이른 낙엽에 눈길이 닿으면 행복하고, 맨발로 흙의 감촉을 느끼며 행복합니다. 어제는 우연히 나선 산책길에서 키 큰 나무들 아래 맥문동 보라꽃이 군락을 이룬 풍경을 보며 얼마나 행복해했는지요. 가끔은 이런 자신이 조금은 부끄러워지기도 해서 사람들 앞에서는 티 내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별 것 아닌 것들에 호들갑이다'라고 할까 봐 눈치가 보입니다. 가족이야 나에 대해 잘 아니까 상관없지만 타인은 눈치를 봐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이런 나이지만 '행복이란 무엇이다'라고 한 번도 정의를 내려 본 적이 없습니다. 행복이란 낱말과 연결된 단어들을 나열해 봅니다. 평화, 기쁨, 온화, 잔잔함, 사랑, 향기, 따뜻함, 몽글몽글, 감사,......


근무지를 옮겼습니다. 지인들이 새 근무지에서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작은 선물들을 보내줍니다.

호접란의 꽃말이 "행복이 나비처럼 날아온다"라고 합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호접란을 보아왔건만 꽃말을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꽃말 때문에 호접란이 더욱 특별해졌습니다. 이 일터에 행복이 나비처럼 날아올 것만 같습니다. 의미란 그런 것입니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기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버립니다. 하지만 의미를 담으면 특별해집니다.


박스 하나가 배달되었습니다. 열기 상그러워 낑낑대다 두고 다른 일을 좀 했습니다. 손으로는 잘 열리지 않아 가위를 들고 와서 박스를 뜯었습니다.


박스 겉면에 '책 그리고 꽃'이라 쓰여있었습니다. '꽃인가?' 했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메모였습니다.


9월이라는 숫자만으로도
높고 푸른 가을하늘이 연상됩니다.
하루하루 변하는 가을향기 느끼며
**초에서 좋은 추억
가득하시길 ~~~


"하루하루 변하는 가을향기 느끼며" 그 구절에서 따뜻해지고 평화로워졌습니다. 메모지를 일하는 나의 책상에서 자주 볼 수 있도록 컴퓨터 화면 아래 스카치테이프로 붙였습니다.


그리고 책 한 권. 보내준 이는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그녀의 향기가 느껴지는 책 한 권이 이번 주 나의 동행이 될 것입니다. 아주 오랜만에 옛 그림과 옛사람들을 만나는 기쁨을 누릴 것입니다.


나는 섬세하지 못합니다. 바쁘게 살다 보니 찬찬히 상대를 생각하며 선물을 고르며 살지 못했습니다.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곁에 이렇게 마음을 섬세하게 살피는 사람이 있다니, 사람 복이 참 많습니다.


때때로, '책 그리고 꽃'이 날아든다면 우리는 좀더 행복해질 것 같습니다. 나도 누군가에게 언제, '책 그리고 꽃'을 배달해 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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