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떠보니 선진국

앞으로 나아갈 대한민국을 위한 제언, 박태웅 지음

by lee나무
우리는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동시에 2차 대전 이후의 독립국이기도 하다. 아주 짧은 미성숙의 근대와 현대를 동시에 이고 살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전후의 폐허에서 미친듯한 질주로 이만큼 왔지만, 그만큼 빼먹은 것들도 많다. 일제강점기부터 지나온 경로는 발부리를 잡아챈다.(머리말에서)


지난 2년 코로나19를 지나면서 주요 포털 사이트에서 K-방역, K-드라마, K-푸드, K-조선, K-배터리 등 '한국'에 대한 세계인들의 관심이 증폭하였고 한국의 위상이 높아졌음을 실감하게 하는 기사를 자주 볼 수 있었다. 우리 문화를 좋아하여 '팬덤'이 형성되고 우리 기업의 브랜드를 신뢰하고 선호하여 우리의 경제성장에도 큰 도움이 되니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정작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국민들은 그렇지만은 않은 듯하다. 지금처럼 양극화, 세대갈등, 젠더갈등, 지역갈등, 정치적 대립 등이 심했던 적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우리는 스스로 '선진국'이라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는 듯하다. 저자의 말처럼 '문화지체'들이 언덕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다.


저출산 시대가 온 것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살기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GDP는 늘고 있지만, 부는 한쪽으로 쏠린다. 드라마 <미생>에 정말 심금을 울리는 명대사가 있다. "회사가 전쟁터라고? 밀어낼 때까지 그만두지 마라. 밖은 지옥이다."



출산율 꼴찌, 노인빈곤율 1위, 자살률 1위 등 지표들이 우리가 스스로 '선진국'이라고 흔쾌히 말하지 못하는 이유를 보여주고 있다. 남들은 선진국이라 말하는데 정작 본인은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는 상황,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선진국이 되어버린 우리는 이제 무엇을 해야 것일까?'


저자는 독일의 예를 들면서 '정책을 결정하기에 앞서 사회 전체의 토론을 요청하는 사회, 사회 전체가 앞으로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토론으로 합의하고, 이슈들에 대해 전 사회의 중지를 모으는' '정의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무엇을', '왜'와 같은 질문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을 때 우리는 선진국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데이터 기반 사회 즉, 객관적이고 정확한 데이터로 공개되고 숫자로 된 분석 가능한 데이터를 다각도로 분석, 통찰하여 다양한 개선방안을 내놓을 수 있는 투명한 정부 시스템이 작동해야 한다고 말한다. '서로 윈윈 할 수 있는 협상과 타협의 태도가 몸에 밴 합리적 시민을 키우는 교육'과 '중산층이 두터운 사회, 서민들이 살만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조언한다.


한 사회의 재원배분의 요체는 그 사회의 보상체계, 즉 인센티브 시스템을 어떻게 만드는 가에 달려 있다. 돈도, 인재도 그 사회가 파놓은 보상체계의 물길을 따라 흘러간다. 잘못된 인센티브 시스템은 사회의 영혼을 망가트린다.


또한 한국 사회의 고장난 인센티브 - 돈을 많이 떼어먹을수록, 직위가 높을수록 벌을 주지 않는, '사람을 죽이는 편이 싸게' 먹히는 산업안전법(한국의 산재사망률은 OECD 최상위권이다), 건물주 중심의 임대차 보호법, 온 동네가 역세권인 강남 땅값, 부실한 사회 안전판 등을 콕콕 집어 개선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의 1인당 GDP가 일본을 추월할 것이다는 경제기사를 심심찮게 접한다. 잘 사는 개인이 많아진 것은 확실한 것 같다. 하지만 GDP가 높아졌다고 해서 선진국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없는, 무언의 '인정' 같은 것이 우리 안에 존재하는 것 같다. 일본에서 일 년 넘게 살았던 나는 일본이라는 나라가 그렇게 만만한 나라가 아님을 안다. 그들은 매우 집요하고 철저하며 기본이 탄탄하다. 기초과학 분야를 비롯한 노벨상 수장자만 해도 25명이다. 일본의 학교 수업을 본 적이 몇 번 있다. 놀라울 정도로 학습의 기본을 철저히 익히게 하며 하루 일과 중 아침 운동, 중간 놀이, 점심시간 놀이, 방과 후 운동 등 학생들의 기초 체력 증진에도 매우 열심이다. 그들은 이미 존 레이티의 '운동화 신은 뇌'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하루 일과 중 빈둥거리는 시간이 없다. 내가 방문했던 일본 학교에서 잠자는 학생들을 본 적 없다. 당시 우리 아이들은 일본의 한 보육원에 다녔는데, 일본말을 전혀 모르는데도 한 번도 보육원에 가지 않겠다고 떼쓴 적이 없다. 정말 즐겁게 다녔고 보육원의 하루 일과, 프로그램을 너무나 재미있어했다.( 딸아이는 사실 한국에 있을 때 어린이집에 가기 싫어서 거짓으로 다리가 아파 일어날 수 없다며 일주일을 기어 다니는 시늉을 해서 부모인 우리가 완전히 속아 넘어간 적이 있다. )


선진국. '잘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왜 선진국이 되어야 할까? 사회 시스템이 투명하고 공정하며, 약자에 대한 보호 시스템이 잘 되어 있는, 사회 구성원인 개인이 살만한 그래서 후대를 낳아 기르고 싶은 사회. 글쎄 묵직한 주제에 부족한 내가 뭐라 말하기도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미중일 사이에서 눈치를 보며 끊임없이 입지를 계산해야 하는 우리는 '제대로 잘 사는 나라'가 되어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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