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때문에 내 인생이 바뀌었다고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2

by lee나무
"어떤 의미에서 신앙이란 자기 자신의 유한하고 불확실한 지식을 초월하려는 정신의 개방이다."



누군가 때문에 정말 내 인생이 영원히 바뀔 수 있을까? 그것도 바뀌게 해 주어 '감사하다'라고 늘 생각하고 흠모하며, 그 안에 머물고자 애쓰는 삶을 스스로가 좋아서 추구하며 평안 속에 머물 수 있는 삶을 산다는 것이 가능할까? 그럴 수 있다면, 아마도, 그래, 그 길을 따라가 보는 것도, 경험해보지 않으면 결국 알 수 없는 거니까, '설사 경험했더라도 내 경험 안에서만 안다고 해야 지당한 것일진대, 경험해 보지 않고 안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가' 하는. (인간은 어쩔 수 없이 같은 곳에 가고 같은 것을 보고도 다르게 느끼고 경험하는 존재이여서. 그래서 안타깝기도 하지만 그래서 또 다행이기도 한, 그래서 존재 자체가 '외로움'일 수밖에 없는. 온전한 일치는 어쩌면 영영 불가능함에서 오는 외로움.)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1' 이 세상에 나왔을 때, 정확하게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나는 공지영이라는 다소 저돌적이고 솔직한 작가의 책이라서, 그리고 '수도원'이라는 낱말만으로도 '고요해져서' 이 책을 읽게 되었던 것 같다. 나는 침묵과 고요, 기도와 명상, 절제와 평화와 같은 낱말들이 저절로 떠오르는 '수도원'이라는 단어 그 자체에 대한 끌림이 있었다. (그것은 내 삶과 거리가 멀어서, 나와 상관이 없어서 쉽게 그렇게 끌리는 것일지도) 지금은 나의 책꽂이 어느 쪽에 빛바랜 모습으로 꽂혀 있을 테다. 어떤 내용이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어렴풋이 수도원과 수도원 여행을 하며 만났던 사람들 이야기가 '편안하고 좋았던' 느낌이 아직 내 속에 머물러 있다. 나는 그 책을 내가 좋아하는 책 목록에 넣어두었고, 누군가 '기억에 남는 책이 무엇이지요?'하고 물으면 묻는 사람의 성향을 따라 이 책을 말하기도 했고 말하지 않기도 했다. 분명한 건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스스로 참 편안했고 따뜻했다.' 그리고 유럽여행에서 수도원은 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이다. 여전히. 글쎄다 나는 아마도 침묵과 고요, 가장 단순화되고 절제된 삶이 주는 평안에 대한 본능적 끌림을 가진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언제나 어떤 수도원에 가든 느끼는 것이지만 고요가, 침묵이, 혼자인 것이 행복했다. 아니, 나 혼자서 그분과 다정한 침묵 속에 함께하는 것이.



'공지영 수도원 기행 1'로부터 몇 년이 지났을까? 솔직하게 '수도원 기행 2'가 출간되었음을 나는 진작에 알고 있었다. 그 무렵 그녀의 소설 '높고 푸른 사다리'를 읽었는데, 그때 나는 그녀가 소설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을 느끼지 못했다. 그 소설 탓이었을까 아니면, '수도원 기행 1과 비슷한 패턴이겠지' 하는 내 마음대로의 추측과 결론으로 지나쳤다. 그랬다. 그리고 나는 일 외 다른 것들에 신경을 쏟을 수 없는 환경에서 일에 파묻혀 살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지난주 나는 '수도원 기행 2'를 주문했다. '수도원 기행 1'과는 다르다. 수도원 기행이라기보다는 작가 개인적인 신앙적 체험이 중심에 있다. 18년 만에 신앙인으로 완전 회귀한, 그녀의 말을 빌리자면 '그날 이후로 나의 삶은 아마도 영원히 바뀌어 버렸다'는 그 말을 수도원 기행을 통해 증명하고 있다고나 할까.


그녀의 이야기를 따라 읽으면서 수도원, 신앙, 삶이란 것, 관계라는 것 등에 대해 생각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신앙인이든 아니든 누구나 나름의 재미와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수도원에서의 일상은 하루 다섯 차례의 기도와 오전 오후 노동으로 이루어진다. 이 기도는 모든 수도 생활의 중심이다........ 밥그릇을 좌지우지하는 이에게 인간이 예속당한다고 할 때 탁발과 다른 점이 이 지점인 것 같다. 당당하되 겸손하게 가난할 수 있는 것이며, 수도원의 살림살이를 외부 사람들의 도움에 의지하지 않게 되어 언제나 떳떳하게 일할 수 있게 하는 절대적 조건이 바로 이 노동인 것 같았다.



노동은 기도 다음으로 신성하게 여겨지는데 이것이 주는 또 하나의 유익은 영혼의 고양이다. 베네딕도 성인은 '한가함은 영혼의 원수'라고 했다. 작가 박경리도 소설 [토지]에서 비슷한 말을 했다. 수많은 시련을 겪는 여인들이 빨래터에서 빨랫방망이를 두드리며 말한다. "일이 보배다. 일이 보배야." 물론 나도 안다. 마음이 교착상태에 이르렀을 때 육체를 움직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말이다. 결국 노동은 건강한 구원이며 치유라는 말이었다.


...... 고행도 없고 헐벗음을 지향하지도 않고 특별히 엄격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곳을 드나들면서 나는 베네딕도회의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인간에게 정말 얇은 규칙서 한 권을 쥐여 주고 극단적인 고행을 지향하지 않지만 절제가 규칙이라는 것을 말하는데...... "많이 먹지 않는 사람"('수도 규칙' 31,1) 혹은 식탐이 없는 사람('베네딕토 이야기')이어야 한다고 못 박는다...... 아마도 그것은 구체성의 힘 그리고 중용의 힘, 너무 강요하지도 너무 느슨하지도 않은 길을 제시했기 때문일 것이다. 수도란 일생을 가는 길, 장자莊子의 말처럼 "발돋움으로는 결코 오래 서 있을 수 없는 법"이니까.


반복과 절제, 정제된 단순함, 본질만 남긴 어떤 것에서 우리는 가장 큰 위안을 얻는 것이 아닐까. 넘쳐서 좋은 것을 나는 여태 보지 못했다.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2> 속 밑줄


진실한 관계는 결코 언제나 일치함을 의미하지도, 언제나 한마음인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런 관계는 꼭두각시 관계밖에 없다. 진실한 관계는 내 느낌이나 생각 그리고 주장을 그대로 표현해도 상대로부터 배척받거나 버림받지 않는다는 믿음을 가진 것을 의미한다. 조금 불편한 상태가 온다고 해도 그것이 근본적인 사랑을 절대 위협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양쪽이 가지는 것이라고 한다.


베네딕도 성인의 '수도 규칙'에 보면 하느님의 피조물은 그 무엇이든, 사람이든 짐승이든 사물이든 그것들을 대할 때 그리스도를 대하듯 하라는 말이 있었다. 아무것도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된다.


예전에 나는 딸만은 아무 고통도 받지 않기를 원했지만, 그건 말하자면 신기루보다 더한 환상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세상에 태어난 단 한 사람도 고통을 피해 간 사람은 없다. 세상은 고통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면 살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나는 이왕이면 그녀가 이 푸르른 젊은 날에 배낭을 지고 고통을 겪기를 바란다. 여기까지 살고 보니 젊은 날의 고난에 대해 새삼 감사드리고 싶다. 그땐 너무도 거부하고 싶었던 아픔들이 내 인생 여러 곳에 항체를 만들어 놓았다. 그 항체가 아니었다면 나는 정말 이 지상에서 더는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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