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자체가 행복

<불편한 편의점>, 김호연 장편소설

by lee나무


작가 지망생 인경이 '왜 나에게 이렇게 잘해주냐'라고 희수 샘에게 물었다. 그녀는 말했다.

"밥 딜런의 외할머니가 어린 밥 딜런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행복은 뭔가 얻으려고 가는 길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길 자체가 행복이라고. 그리고 네가 만나는 사람이 모두 힘든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에 친절해야 한다고."


인경이 편의점 야간 알바일을 하고 있는 독고씨*에게 작가 특유의 호기심으로 하이에나처럼 집요하게 그의 과거를 캐물었을 때 그 와중에 독고씨의 입에서는 이런 말이 흘러나왔다.


"그러니까요...... 편의점에서 접객을 하며.... 사람들과 친해진 거 같아요. 진심 같은 거 없이 그냥 친절한 척만 해도 친절해지는 것 같아요."



소설 속 주인공 '독고'와 인물들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한 것은 결국 이 두 문장의 대화로 요약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길 자체가 행복', '척일지라도 친절한 것의 힘'


세상과 단절한 채 서울역이라는 공간에 자신을 가두고 알코올로 자신을 지우며 삶을 포기했던 '독고'라는 한 남성이 염여사라는 한 사람의 '따뜻한 온기'로 편의점이라는 세상 밖으로 나와, 그곳을 드나드는 사람들과 만나면서 지웠던 자신을 찾아가고 회복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사람들은 타인 안에서 자신을 본다. 타인과 만나고 소통하면서 타인을 알아가기도 하지만 타인을 통해 내가 누구인지 더욱 또렷하게 인식하게 되기도 한다. 타인과 접속하는 일이 곧 나와 접속하는 일이었으며, 타인에게 내 시간을 내어주는 일이 궁극에는 나에게 쓴 시간이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되기도 한다. 독고씨는 그렇게 편의점을 찾는 사람들과 접촉하고 그들과 담담하게, 어눌하지만 모든 계산을 뺀 채 진솔하게 소통한다. 그리고 그의 둔한 듯 담백한 조언은 사람들의 심연을 파고들고 삶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힘이 된다. 각자의 깊은 상처에 반창고를 붙이고 새 살이 돋아나게 하는 희망 한 줌 된다. 독고씨는 그렇게 사람들을 만나면서 스스로 치유되고 있었다. 그들을 통해 지웠던 일그러진 자신의 모습, 과오, 상처, 부족함을 보고 '용서를 구하고 살아내야할 이유'를 찾게 된다.


'모든 절망은 사랑의 상실에서 온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2에서)는 말처럼. '지그시 바라봐주는 한 사람만 있으면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낼 수 있다'는 말처럼, 사람에게 있어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가는 '따뜻한 온기'에 대해 짙게 생각해보게 된다.






* <불편한 편의점> 속 인물들


-독고: 서울역 노숙자, 알콜성 치매, 자신의 이름도, 가족도, 과거도 기억하는 것이 없음. 염여사의 분홍색 파우치를 찾아주면서 염여사와 알게 되었고, '불편한 편의점'의 야간 알바일을 맡게 됨


-염여사(영숙): 편의점 주인, 고둥학교 역사교사로 정년퇴직, '편의점이 자기 하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직원들의 삶이 걸린 것'이라 생각함. 사십초입임에도 아직도 방황하며 정신 못 차리는 아들 때문에 속 썩음


-시현: 스스로 '아싸'임을 자처. 자신의 성격에 가장 잘 맞는 일이 공무원처럼 평범한 일이라 생각하여 9급 공무원 준비 중인 편의점 낮 알바생. (공무원을 국민의 편의를 봐주는 공간에서 또 다른 제이에스들을 만나는 삶이라고 한 부분이 딱 맞다 시피어서 웃음이 나왔다.)


-오여사(선숙): 중소기업 과장 자리를 그만두고 나와서 몇 년 간 가게를 꾸려 나가다가 가출해버리고, 병들어 집으로 돌아왔을 때 왜 멋대로 살았냐고 따졌더니 대답도 없이 집을 나가버려서 이제는 생사조차 알 수 없는 남편과 대학 졸업 후 대기업 취직했는데 1년 2개월 만에 때려치우고 독립영화에 빠졌다가 우울증을 앓았다가 지금은 외무고시 준비한다며 컴퓨터 게임이 빠져있는 아들 때문에 모든 게 까칠한 오여사. 편의점에서 알바하며 생계를 꾸리고 있음


-경만: 스스로 루저 인생이자 불우한 소시민 가장이라 생각함. 밤마다 편의점에 들러서 참깨라면, 참치김밥, 참이슬로 자신의 신체를 한탄하는 것이 유일한 낙인 사람


-인경: 극작가. 그 전엔 연극배우. 절필을 각오하고 이 불편한 편의점이 내려다보이는 빌라 3층에 희수 샘의 배려로 겨울을 보내게 되면서 주인공 독고를 알게 되고 '독고의 이야기'를 쓰게 됨


-강민석: 염여사의 속 썩이는 아들


각자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오늘을 살고 있는 내 이웃의 모습 같아 친근하고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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