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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 Sep 22. 2020

카타르시스




그래, 그렇게 되었다. 나는 차갑게 그를 떠나지 못했고, 그로 인해 나의 머리카락 쥐뜯기 및 온갖 분노의 행패들은 그렇게 그냥 ‘쇼’가 되었다. 그러고 나서, 그날 밤 우리는 더러운 대화를 나누었다. 내가 처음 알게 되어 결국은 사랑하게 되어 버린 그 동네는, 아름다운 한강 변두리 산책로와, 그가 사는 포근한 오렌지 빛 작은 방과, 별것도 아닌 영등포 밤동네 불빛이 아름답게 보이던 그 행복한 옥상의 추억들에게서 밝혀진 추악한 사실에 믿을 수 없는 고통이 녹아들었다. 나는 술을 진탕 마시고 벌게진 얼굴로 아기처럼 울었다. 엉엉 울음이 울리는 목구멍은 화상을 입어 물집이 잡힌 듯 했다.


믿을 수가 없어 재차 그에게 사실 확인을 해야 했다. 사실은, 아직도 믿을 수가 없다. 나는 나에 대한 그의 마음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것은 확실한 증거로부터 유추해야 하는 종류의 사실은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증거도 확실했다. 나에게 모든 마음과 열정을 담은 사랑을 보여주던 눈빛은 비밀을 들키자마자 초점을 잃어버렸고 자꾸만 시선을 피했다. 아마 나는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보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저 원하는 것에 마음이 달아 눈이 멀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우리의 사랑은 그 때서 끝났다. 하지만 우리의 연애는 몇 달 더 이어지게 되었다. 사랑이 이미 끝난지도 모르고 나는 그에게 걱정의 마음을 전했다. 나에 대한 배신의 행위에 다른 비뚤어진 이유가 있을 것이라며. 나중 보니 그것은 결국 그에게 핑곗거리를 던져준 셈이 되었지만 말이다. 극한의 상황에 부딪히니 사람이 현실도피를 하게 되더라. 행복회로가 아닌 ‘생존회로’ 가 쌩쌩 돌아갔다. 그래서 그의 바람의 이유는 이것들로 정해졌다 : 내가 그에게 충분한 사랑을 보여주지 못해서. 나의 사랑의 표현이 너무 부족했기 때문에. 나의 이전 연애 상대들이 그에 비해서는 너무 잘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 열등감에. 그리고 그에게는 자기 방어 기질이 있을 수밖에 없는 어린 시절의 아픈 상처가 있었기 때문에~ 등등의 별 거지같은. 나는 눈물을 반짝이며 그 이유들을 모두 납득했고 그에게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그리고 내가 그를 버리지 못하고 계속 연애를 이어가기로 한 것이 무슨 대단한 세기의 사랑마냥 느껴졌다. 


우리는 계속 만나기로 했다. 내가 그 사랑을 포기하지 못했던 것은 내 탓이 아니다. 바람피운 상대를 계속 만나면 안 된다는 것은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나로서는 멀쩡한 사랑에 갑자기 뒤통수 맞은 격이다.


아침이 밝았다. 그날 오픈 근무였던 나는 새벽에 먼저 눈을 떴다. 내가 뒤척이자 그럴 땐 언제나 그랬듯, 너무나도 사랑하는, 세상에서 제일 포근한 내 연인이 뒤에서 나를 감싸 안아 주었다. 내가 그에게서 제일 좋아하는 것들 중 하나, 깊게 잠든 무의식에 나를 꼭 꼭 껴안고 좋은 말들을 중얼거린다는 것. 나도 시간을 확인하고 뒤돌아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우리는 팔에 힘을 주고 서로를 끌어당겼다. 포근한 그의 냄새를 맡으며 따뜻한 목덜미에 입술이 닿으며, 독극물이 퍼지듯 가슴 깊이 가시처럼 생각이 파고들었다. 이 품에 다른 여자가 안겨 있었단 사실이. 그렇게 지옥이 시작되었다. 











눈을 멀게 한 사랑을 하게 해 준 그가 어찌 보면 감사하기도 하다. 글쎄, 딱 한 번 해보길 갈망하던 것을 경험한 느낌이다. 자기 학대로부터 나오는 비뚤어진 쾌락이 있다. 마음을 멍들게 하고 나 자신을 죽이면서까지 은밀히 무언가를 즐겨 본 경험이 있는가? 우리 모두 숨기고 있지만 어느 한 구석에서는 해본 적 있는 경험, 느껴본 적 있는 느낌, 혹은 갈망하는 감정. 길티 플레져라 칭하기엔 조금 더 무게감이 있는 감정이다. 그 묘한 카타르시스를 우린 섹스에 드러냈다. 그런 섹스는 최고의 섹스다. 아무한테도 보여줄 수 없는 것은 비참한 내 모습이 아니라, 그런 비참함을 즐기는 내 모습이다. 그러나 건강한 사람이 항상 자신의 비참함을 즐기고 살지 않듯이, 그런 나를 본 사람을 오래 보는 것은 쉽지 않았다. 만남을 지속하며 한동안 그와의 섹스는 짜릿하고 즐거웠지만, 점점 섹스가 가져다주는 만족감은 익숙해지고 괴로워졌고, 그에 대한 마음이 천천히 식어갔다. 우리의 관계에는 점점 집착만이 남아, 뜨겁게 시작하고 지속됐던 관계는 너무나 평범하고 지루한 이별로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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