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23일을 시작으로, 브런치에 첫 글을 내디딘 지도 어느덧 655일째 되는 날이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간 육아휴직이라는 시간이 대부분을 차지했고,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 다시 회사 생활에 임하게 되는 등 말로는 다 표현하기 힘든 굵직한 일들이 내 인생 한 편을 장식했다.
그래서 그게 뭐 어떻다는 말인가? 오늘은 내게 조금은 남다른 날이다. 2024년 12월 9일, 직장인이 끔찍이도 싫어하는 월요일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내가 브런치를 시작한 이후 100번째 글을 쓰는 날이기도 하다. 그게 뭔 대수로운 일이라 싶겠지만, 이는 나에게는 조금 남다르게 다가온다. 브런치 글 연재 이후 655일의 시간이 흘렀고 단순 계산으로 매 6.5일마다 한 편의 글을 썼다 정도로 치부될 수도 있겠지만, 이곳 브런치에서 나는 생각보다 많은 결과물들을 도출해 낼 수 있었음에 의미를 부여해보려한다. 그게 뭔 말이냐고? 자. 이제 이야기보따리 풀어보겠다.
첫째, 인내심을 길러냈다. 뭘 야심 차게 시작했다가도 조금만 어려움을 느끼면 줄 곧 포기만 해왔던 내가 브런치라는 플랫폼에서 드디어 100번째 글을 기록하게 됐다. 인내심의 '인'자도 모르며 뼛속까지 한국인이었던 내가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연재한 결과가 있는 12월의 9일. 오늘만큼은 그간 나 자신에게 수고했다고 칭찬해주고 싶은 날이다. 육아에 치여, 술 마시느라 때로는 회사 업무라는 갖가지 이유로 인생을 기록한 날이 비록 적어 보이긴 하지만 뒤늦게라도 글쓰기에 재미를 붙일 수 있게 만들어준 카카오 브런치에 감사함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다시 한번 깨닫는다. '사람은 좋아하는 일이 있다면 미친 인내심을 가질 수 있다.'라고 말이다. 나는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두 번째, '나만의 대나무숲'을 만들었다. 회사에서는 업무에 치이고 집에서는 공동 육아하느라 심신이 지쳤으나 유독 글쓰기를 할 때면 오히려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잠시 일상에서 벗어난 느낌이랄까? 다음 날 출근을 해야 하지만 12시 되어도 최대한 완성도 있는 글 하나를 전개하고 싶고, 마음 안의 소리를 마음껏 외쳐댈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됨에 일종의 해방감을 얻었기 때문일 게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치며, 그렇게 하나 둘 나의 마음을 솔직히 드러내고 한편으로 내 인생을 통으로 재조명하며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나를 그려보는 계기가 되었음이 분명해 보인다.
가족 그리고 지인과의 대화에서도 쉽게 풀리지 않던 고민에 대한 갈증은 글쓰기로부터 해방됐다. 그렇다. 내가 가진 고민과 문제는 그 어느 누구도 대신 해결해 줄 수 없다. 완전 100% 본인 스스로 감당하고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여러분 또한 먹먹한 마음을 해소할 수 있는 나름의 방법을 찾는 일에 열중했으면 한다. 글쓰기가 됐든 뭐가 됐든 간에. (이미 발견했다면 당신은 나보다 나은 사람이다.)
세 번째, 버킷리스트 중 하나를 이뤘다. 100번째 글을 쓰면서 그간 기록한 글들을 주욱 훑어보았다. 단발성 글로 시작한 나의 브런치는 이후 브런치북을 연달에 게재하고 매거진이라는 형식으로 일상의 생각을 글로 풀어내고 있다. 이 99개의 글들이 내 인생을 온전하게 말해준다고 할 순 없겠지만, 그래도 인생을 잘게 쪼개봤을 때, 밀도 높은 인생의 어느 순간을 가감 없이 기록해 냈기에 훗날 돌아봤을 때 자서전 같은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싶다.
인생의 순간을 차근히 되짚고 글을 전개하며 느낀 바가 하나 있다면, 내 입으로 말하기 좀 그렇긴 하지만 '나는 생각보다 열심히 살아왔다.'라는 것이다. 대기만성이라는 사자성어. 모두들 알고 있지 않은가?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사자성어로 '큰 그릇은 늦게 만들어지는 법'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평생 백수로 살 것만 같았던 내가 천운으로 취업하게 되고 좋은 인연을 만나 결혼하고 둘째가라면 서러운 예쁜 딸아이와 함께하는 등 인생의 대반전 극을 글로 옮기며 울고 웃으며 열심히 살아온 나 자신에게 박수를 쳐본다.
한편으로 태어나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던 '출간'이라는 내 인생의 멋진 퍼포먼스를 브런치를 통해 구현해 낸 일이 아마 2024년에 내가 얻은 최고의 성과 중 하나일 것이다. 진짜 말도 안 되는 시간을 보내며 나의 30대 후반의 멋진 한 페이지를 그렇게 완성했다. 꿈꿔왔던 일이 현실로 벌어졌던 일, 여러분 한 번쯤은 있지 않은가? 그 당시의 느낌이 어땠는가? 나 또한 그런 느낌이었다.
생각만 하고 살기엔 시대의 속도가 너무나 빠르다.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기 쉬우며, 옵션이 너무나도 많아 어떤 것이 맞는 길인지 고민할 틈도 없이 우리를 사지로 밀어 넣는다.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닥치거나 내 능력을 벗어난 것과 같은 일이 생길 때, 내가 습관처럼 하는 행동 하나가 있다. 바로 '깊게 숨쉬기'. 3~4번 정도의 긴 호흡만으로 긴장과 두려움은 조금 떨쳐낼 수 있다.
나에게 글쓰기란 3~4번의 긴 호흡과도 같다. 세상은 요지경이라지만 잠깐 쉬어가며 하루 또는 나아가서 인생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나에겐 글쓰기와 같다. 사실 그렇게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네 인생이지만 조금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지 않은가? (나도 그렇다.) 그럴 땐, 일상의 삶을 넘어 새로운 무언가로 삶을 개척해 보자. 그게 무엇이 됐던 건에 여러분의 삶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켜 줄 것이다. (매일 당연한 이야기만 해서 미안하다.)
100번째 글을 이어 200번째 글을 쓰는 날, 나는 어떻게 진화되어 있을까? 무엇이 됐든 현재의 삶을 꾸준히 기록하며 시야를 넓혀가는 내가 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