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으로 살아가며 스트레스 하나 없이 사는 이가 있을까? 제 직급과 직위에 따라 스트레스는 항상 있기 마련이다. 단지, 난도와 강도에 차이가 있을 뿐. 나와 같이 실무자 위치에 있는 공무원의 경우는 어떨까? 대민업무를 맡으며 받는 스트레스와 팀장급부터 출발해 상위 상급자에게 순차적으로 보고를 마쳐야 하는 업무가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
그럼 내 위 상급자들은 어떨까? 팀장은 국장을 뛰어넘어 최소 서열 2위 상급자에게까지 보고 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실무자들의 보고를 받고 판단을 내려 일의 속도 그리고 진행방향을 올바르게 설정해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이상의 과장급 고위 공무원은 부서와 국 전체를 이끌고 가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을 터이고. (올라갈수록 오히려 무게감 있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까 싶다.)
일이 삶에 과몰입되는 상황을 어느 순간부터 원하지 않았다. 직장은 나의 시간을 바쳐 월급이라는 결과물로 정당하게 교환되는 곳이라 생각하게 된 지 어언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했음에도, 내가 직장인으로서 짊어져야 하는 스트레스는 여전히 그리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다만, 일과 후 딸아이 덕분에 웬만하면 일을 집까지 끌고 오지 않게 됐다는 사실이 그나마 위안이 될 뿐이다. 육아휴직 복직 후, 한 두 달 꽤나 힘든 부침이 있었다. 책상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며, 업무파악도 안 된 내게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울분을 내게 토해내거나, 직접 찾아와 삿대질을 해대는 이들을 보고 있으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수밖에.
그래서 이 깊은 스트레스를 해소시킬 수 있는 방법을 정말 열심히도 찾았다. 술도 열심히(?) 마셔보았고, 아이와 함께하는 육아시간에 매진해 최대한 업무를 잊고 살아보려는 시도도 이어졌다. 어느 정도 효과는 있었으나, 그런데도 내 안에 있는 뿌리 깊게 내려진 스트레스 최하단까지 죄다 뽑아내기에는 모자라다는 느낌이 들었다.
작년 9월의 어느 날, 한 출판사와 출간 계약을 맺게 되어 원고 교정을 위해 스터디 카페에 등록하게 됐다. 출간을 위해 등록한 이 공간에서 나는 오랜만에 치열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보며 새로운 자극을 받게 된다. 그들과 동화되며, 자연스레 목표를 향해 정진할 수 있었다. 그 덕에 출간도 무사히 마치게 됐으니 소기의 성과는 달성해 낸 셈이다.
그 과정에서 내 안의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느낌이 들었다. 회사에서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는 날에는 퇴근 후 간단히 저녁을 먹고 아이를 씻긴 후, 아내의 양해를 구해 무작정 스터디카페로 향했다. 무엇이 나를 이곳으로 발길을 향하게 만들었을까? 내 안의 근심걱정을 날려버릴 수 있는 곳이 스터디카페였다고 하면 여러분은 믿을 수 있겠는가? (안 그래도 스트레스받아 죽겠는데, 다시 공부를 하러 간다니.)
나는 이곳에서 글쓰기를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새로운 나라는 사람을 창작해 내기 위한 액션. 글쓰기를 할 때면, 내 안에 내재된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가 마치 무더운 여름날, 시원한 맥주 한잔에 갈증이 사라지는 듯한 놀라운 경험을 하곤 했다.
유명한 작가도 아니고 당장 돈이 벌리는 일도 아님에도 정말 행복했다. 단지 내가 목표한 바를 향해 달릴 수 있다는 작은 도전과 글 하나를 완성해 냈다는 성취감이 나의 스트레스를 상당 부분 해소해 주었다. 그렇게 일과 후 스터디카페 방문은 나의 새로운 일상이 되었다.
현대 경영학의 창시자라 불리는 피터 드러커는 이렇게 말을 한다. '모든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결정과 실행 사이의 간격을 아주 좁게 유지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스트레스를 극강으로 받는 날이면, 글쓰기를 통해 다른 삶을 살아보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들 때면 무조건 스터디카페를 향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꾸준히 무언가를 기록하는 행위가 내 꿈에 한 발자국 내딛는 행위라 생각했다. 브런치에 올리는 나의 두서없는 글 하나가 누군가의 공감을 사기도 하고, 때로는 욕을 먹기도 하는 등의 현상이 참 신기했다.
수동적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회사와 달리 능동적이고 주도적으로 살아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내게는 바로 글쓰기였던 것이었다. 인간은 꿈을 먹고사는 동물이라고들 하지 않는가? 그렇게 나는 글쓰기를 통해 내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기로 했다.
현재의 삶을 받아들이고 체념할 것인가? 아니면 극복을 위해 무언가를 시도할 것인가? 우리는 기로에 서이다. 영화 『매트릭스』의 주인공 네오가 '빨간 약을 먹을 것이냐? 파란 약을 먹을 것이냐?' 선택해야 했던 상황과 같이 나는 네오의 결정을 따라가 보기로 결정했다. 이제 진실을 알아갈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