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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그만 둘 준비

by 자향자

입사 후 처음으로 회사를 그만 둘 준비를 한 적이 있었다. 때는 바야흐로 2022년 9월의 일이었다. 그 당시 상황은 이러했다. 나는 입사 후 내가 그토록 원했던 총무과로 인사발령이 나게 된 것. 심지어 그것도 인사팀으로. 입직하면서 내가 그토록 꿈꿔왔던 부서에 몸 담게 됐으니, 생각보다 빠르게 목표를 달성한 것만 같았다.



인사팀. 주요 부서라 할 수 있는 총무과 내 서열 2위의 팀이며, 1,500여 명이나 되는 직원의 인사를 어느 정도 매만질 수 있는 파워를 지니고 있다. 언제나 똑 부러지고 칼 같은 대답으로 전화조차 부담스러운 이미지가 내가 생각한 인사팀이었다. 사실 한 번쯤은 가보고 싶었다. (어느 드라마에 나오는 멋진 부서의 이미지였달까?)



이런 대외적인 모습만 보았던 나는 실제로 어떤 식으로 업무가 진행되는지 전혀 알턱이 없었다. 당시 인사팀으로 발령 났다는 소식에 주변에서는 축하의 인사가 끝이지 않았다. 앞으로 회사 내에서 승승장구(?) 할 일만 남았다고 말을 전하는 이도 있었으니 말 다했지. 어안이 벙벙한 순간을 뒤로하고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잠시나마 부푼 꿈을 꾼 적도 있었다.



발령 후, 주말을 기해 다른 지자체로 전출 간 전임자에게 인수인계를 받았다. 끊임없이 설명해 대는 인수인계 사항 앞에 절로 압도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업무량은 엄청났다. 아니 잔인하리만큼 많았다. 무언가를 시작해 보기 전에 압도당한 경험이 있는가? 그 당시의 내가 그러했다.



매일 빗발치듯 오는 전화에 쉴 새 없이 쏟아지는 공문 그리고 당장 처리해야 하는 업무까지 이 모든 것을 한 사람이 해왔다니. 전임자가 참 대단하다고 느꼈다. 인사팀의 수준은 상당했다. 실제로 일주일 업무를 해보니 이건 내가 따라갈 수준의 업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무원 간 인수인계는 꽤나 사악하다. 인수인계를 해주긴 하지만 하루 만에 업무를 알아내기란 사실상 불가능하고, 내 사례와 같이 전임자가 전출을 가버리거나, 휴직이라도 들어가는 날에는 어디에 물어볼 곳도 마땅찮다.



그즈음부터 회사가 무척이나 가기 싫어졌다. 매일 저녁 소주 한잔을 마시며, 취기에 아내에게 어렵다고 못하겠다고 수십 번은 말했던 것 같다. 아내도 이런 나를 보며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겠지. 본인이 그토록 가고 싶은 부서에 가게 되었는데 정작 사람이 망가지는 상황이었으니.



인사발령 후, 그렇게 한 달의 시간이 흘렀다. 도저히 못하겠어 팀장에게 따로 면담을 신청했다. 솔직하게 말했다. "저는 못하겠습니다." 그리고 연이어 이런 말을 꺼낸다. "그냥 의원면직 하겠습니다."라고 말해버렸다. 지독했던 3년 간의 수험생활이 빚 좋은 개살구가 되며, 불투명한 인생을 살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도망치고 싶었다.



그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책상에 앉아있으면, 멍하니 있게 되고, 나중에는 전화기 소리조차 무서웠던 그곳에서의 삶은 진정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었다. 어쨌든 나의 사직서는 어떻게 됐을까? 불행인지 다행인지 반려된다. 다른 대체자를 구할 때까지만 있으라 말하는 팀장의 말이었다.



다른 부서로 보내달라는 말이 아니었다. 그냥 당시의 나는 내가 아니었고, 그곳을 벗어나는 게 나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젊으니까 뭔가 다른 일도 할 수 있을 자신감도 있었고, 뭔들 못 하겠냐는 당돌한 생각도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타 부서로 내쳐진다.



그렇게 4년의 시간이 흘렀다. 지금은 과장이 된 당시의 팀장의 배려로 나는 본래의 나 자신으로 돌아왔다. 당시의 경험 이후, 내 삶의 방향성이 판이하게 전환된다. 더 이상 회사에 내 모든 것을 쏟지 않기로 했다. (내 열과 성을 다하기에는 너무 크고 깊은 부침이 있었다.)



평생 직장인으로 사는 게 당연한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자본주의가 세뇌시킨 수많은 주입식 교육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이후 나는 답답한 마음에 블로그를 시작했고, 이후 소정의 광고 수입을 얻어보기도 하며 돈을 버는 방식에 대한 프레임 조금씩 깨뜨리게 된다.



내 꿈은 정년퇴직이 아니라, 정년퇴직 훨씬 이전에 퇴사하는 게 꿈이라면 꿈이다. 뭘 믿고 퇴사할 거냐고? 그 과정을 이 자리에서 밝히는 것은 시기상조다. 명확한 건 아직 아무것도 없다. 다만, 나는 일과 이후 내 삶의 주도권을 되찾아오기 위한 몸부림을 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은 인지해주길 바란다. (진짜 실패는 실패할까 두려워 시도조차 않하는 것이다.)



'낙숫물이 댓돌을 뚫는다.'라는 유명한 속담이 있다. 일과 후 책상에 앉아 글을 하나씩 전개해 나간다. 나의 글 하나는 낙숫물과 같다. 여러 글이 모이고 쌓여 댓돌을 두드리고 구멍을 내는 어느 순간의 찰나, 그날이 나의 독립기념일이 될 것이다. 어쨌든, 그날의 나는 회사를 그만 둘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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