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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그녀를 만나러 갑니다

by 자향자

24년 7월의 복직 이후, 가족 중심의 삶을 살겠노라 다짐했건만 다시 현실과 조금은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업무에 다시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고, 신설된 팀에 배치되어 각종 민원 처리를 하는데 집중할 수밖에 없던 까닭에 가족, 특히 딸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조직에 더 이상 충성하지 않겠다는 나의 마음과는 다르게 나의 몸은 어린 시절부터 굳게 베인 그놈의 유교적인 습관 덕분인지는 몰라도, 체제에 순응해야 했고, 복직 전 야심 차게 꿈꿔왔던 가족 중심적 사고는 하나 둘 추진력을 잃어갔다. 내성적이고 표현할 줄 모르는 내 성격이 가장 컸으리라.



아내와의 동반 육아휴직을 통해 18개월이나 24시간 함께했던 시간이 무색하리만큼 판이하게 달라진 24년 하반기. 답답한 내 마음과 다르게, 나의 늦은 귀가에 조금씩 적응해 나가는 딸아이에게 대견한 마음 그리고 미안한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딸아이를 봐주고 있는 나의 부모님은 종종 이런 말을 건네곤 하셨다. "원래 그런 거야." 나는 이 말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조직에 희생을 해야 함이 마땅하다는 나의 부모님의 말씀에 꽤나 서운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게 과연 맞는 말일까?라는 질문을 수도 없이 되뇌곤 했다. 현실은 어쩔 수 없었지만.


그러던 어느 날, 퇴근길 차 안에서 아내와의 대화를 통해 어느 가족의 이야기 하나를 듣게 된다.


"같이 근무하는 주임님은 만 3세쯤부터 주말에 매주 아이와 놀러 다녔대"

"응? 대단하네? 와 쉽지 않은 일인데 그건"

"세상의 다양한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다나 뭐라나."

"진짜 대단하다..."


이 말을 듣자마자 나 자신은 어떠했는가 되돌아봤다. 아내에게 말하진 않았지만 사실 조금 창피스러웠다. 주중에 회사에서 열심히 살았다는 핑계로, 주말에 나는 아이와 뜨뜻미지근한 시간을 보내오지 않았던가? 방전된 체력을 충전한답시고, 아이에게 소홀하진 않았는가? 질문이 끝없이 이어졌다.



'자녀가 생각하는 최고의 선물은 시간과 사랑이다.'라는 말이 있다. 요즘의 나는 아이에게 최고의 선물을 주고 있었던가? 아내와 차 안에서 있었던 찰나의 순간을 뒤로하고, 그날 이후 나는 '내 체력에는 한계가 없다.'라는 말을 되뇌면서 주말만큼은 그녀와 함께하는 시간을 늘리기로 마음먹었다.



새해 첫해, 집 근처 시화나래 전망대를 관람하러 가는 것을 시작으로 딸아이와 동행에 나섰다. 새로운 것들을 보여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과 이제껏 한번 본 적 없던 것들을 직접 눈으로 보며 말을 내뱉는 아이를 보며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아내의 직장 동료 덕분에 나는 내 사고의 한계성을 그렇게 또 하나 깨뜨렸다. 뭐든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 아무리 바쁘더라도 한 달에 두 번 아이와 야외활동을 하는 것으로 마음먹었다. 주말에 아이와 어디 가야 할지 아내와 고민하는 시간도 행복하고, 아이와 함께 바람을 쐬러 나가는 날이 기다려지는 요즘이다.



아이와 목적지를 향하는 길, 룸미러를 통해 아이의 동태를 살핀다. 혼자 신이 나서 동요를 불러대는 날에는 아이와 목청껏 소리 높여 동요를 함께 부른다. (나비야부터 장난감 기차까지 수도 없다.) 그녀는 어쩌면 부모와 함께하는 시간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지 않았을까?



사실 아이는 부모를 충분히 기다려주었다. 정확한 문장 하나를 완성해 내는데 아직 어려움이 있는 아이지만 그 아이의 눈망울을 보고 있노라면 그녀가 눈빛으로 무엇을 말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를 수 없다. 나는 이제 그녀의 기대감에 결과물로 보답하려 한다.



체력에 한계가 있다면 운동을 할 것이고, 그녀가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기를 쓰고라도 가보려 한다. 이제껏 나만을 위해 살아왔던 나는 부모가 된 이후 많은 것을 내려놓게 되었다. 다 내려놓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이제 다시 주말이다. 그녀를 만나러 갈 시간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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